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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 대박 맛 본 OTT, 이젠 ‘오리지널 애니’에 승부수 건다

중앙일보

2026.02.07 23:42 2026.02.08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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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의 한 장면. 가난에 허덕이던 주인공 덴지가 악마 포치타와 계약으로 '체인소 맨'(사진)이 되는 능력을 가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시리즈 중 하나인 영화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한국에서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을 넘겼다. 사진 TV TOKYO
종합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애니메이션 장르에 승부수를 걸고 있다. 일본 애니의 인기가 지속되고 K팝 소재 애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성공을 거두자 직접 스토리 개발을 주도하면서 오리지널 작품 생산에 공들이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시청자 유입을 위해 콘텐트를 확보하던 데서 나아가 작품의 세계관을 IP(지식재산권)화하는 데 힘을 쏟는 분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OTT계의 ‘공룡’ 넷플릭스는 지난달 21일 일본의 애니 제작사 마파(MAPPA)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두 회사는 스토리 개발부터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새 프로젝트들을 함께 진행한다. 마파의 새 애니들은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된다”고 했다. 2011년 설립된 마파는 ‘체인소 맨’, ‘주술회전’, ‘진격의 거인 더 파이널 시즌’ 등 대형 IP를 다수 보유하며 빠르게 성장한 제작사다.

넷플릭스가 마파를 껴안은 것은 애니가 더 이상 ‘마이너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애니 시청률은 3배 증가했으며, 2024년에만 총 10억회 이상 시청됐다. 특히 ‘케데헌’은 공개 3개월 만에 넷플릭스 최초로 누적 시청수 3억회를 돌파하며 전 부문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티빙에서 지난달 29일 공개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테러맨'. 동명의 웹툰이 원작으로, 불행을 감지하는 눈을 가진 고등학생 정우(사진)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테러리스트가 되어 음모와 맞서는 이야기다. 사진 티빙
국내 OTT도 애니 투자개발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웨이브는 2024년 8부작 ‘호러나이츠’를 오리지널 시리즈로 독점 공개했다. 티빙은 2021년과 2023년 애니 ‘신비아파트 특별판’을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한 데에 이어 지난달 29일 동명 웹툰 원작의 애니 ‘테러맨’을 오리지널 시리즈로 내놓았다. 모두 국내 제작사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이 같은 개발투자는 앞서 인기 애니를 유통하면서 신규 가입자 유입 효과를 톡톡히 본 데서 비롯됐다. 웨이브 관계자는 “2024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 지난해엔 ‘코렐라인’ 등 독점 제공 애니가 늘어나면서 신규 유입자가 확 늘었다”고 했다. 웨이브에 따르면 특정 애니를 시청하기 위해 웨이브를 찾는 신규 이용자들은 2024년 대비 2025년 20~30% 증가했다.
지난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관객들.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한국에서 누적 관객수 560만명을 넘기는 성과를 냈다. 뉴스1
애초에 발품 팔아야 찾아볼 수 있던 ‘비주류 문화’ 애니를 양지의 ‘대중 문화’ 영역으로 끌어올린 게 OTT다. 특히 디즈니가 OTT 디즈니 플러스를 론칭하던 2019년, 넷플릭스가 콘텐트 차별화를 위해 일본 애니를 적극 유통하기 시작했다. 국내 시청자 입장에선 일본 TV나 극장판 애니를 ‘시차 없이’ 실시간 소비하는 게 가능해졌다.

김경수 영화평론가는 “과거엔 국내 TV에서 방영하지 않거나 국내 극장이 수입하지 않은 최신 애니를 보려면 불법 사이트 등을 거쳐야 했는데, 이젠 OTT를 통해 현지와 똑같은 시점에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귀멸의 칼날’(2019~), ‘주술회전’(2020~), ‘최애의 아이’(2023~) 등이 OTT의 성장과 함께 흥행한 대표적인 애니다.


이렇게 형성된 팬덤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에도 화력을 더한다. 지난해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세계 흥행 수입 약 1000억엔(한화 약 1조원)을 돌파하며 글로벌 매출 1위의 성과를 냈고, OTT 시리즈 시청률이 역주행했다. 이는 콘텐트 업계가 팬덤을 확보한 IP에 주목하는 2020년대 트렌드와도 맞물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지난해 발표한 '2025 콘텐츠 IP 거래 현황조사'. 콘텐츠IP 산업 규모는 62.6조로 추정된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발표자료 캡처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IP 거래 현황조사’에 따르면 국내 콘텐트 IP 산업의 규모는 2023년 약 33조2000억원에서, 2024년 약 62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애니는 제작형식이 자유롭기 때문에 만화·웹툰·웹소설·게임 등 원천 IP를 연결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라고 설명했다.
에버랜드 '케이팝 데몬 헌터스' 테마존에서 관람객들이 다양한 굿즈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굿즈는 키링, 헤어핀 등 총 38종으로 구성됐으며, 사진 속 캐릭터는 남자 주인공 진우가 키우는 요괴 '더피'다. 뉴스1
굿즈 사업 등 부가판권 수익을 올리기에도 적합한 장르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애니는 2D 캐릭터가 움직인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판타지성’이 타 장르보다 크다. 부가판권 수익을 올리기에 좋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케데헌’의 경우 공개 3개월 후인 지난해 9월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에버랜드·패션 부문 에잇세컨즈, 편의점 GS25 등과 협업 상품을 선보였는데 주요 캐릭터를 활용한 한정판 제품들이 빠르게 소진됐다.
네이버웹툰이 지난해 9월 내놓은 숏폼 애니메이션 서비스 '컷츠'의 이용화면. 왼쪽부터 크리에이터 피드, 재생화면, 애니메이션 추천 화면이다. 컷츠 캡처
애니는 앞으로도 OTT의 활로가 될 전망이다. 한창완 교수는 “숏폼 소비가 늘면서 애니의 경쟁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본다”면서 “지난해 9월 네이버웹툰에서 내놓은 숏폼 애니 서비스 ‘컷츠’가 대표적”이라고 전했다. OTT 업계 역시 숏폼에 주목하고 있다. 2024년 왓챠에선 숏폼 드라마 OTT인 ‘숏챠’를, 지난해 티빙에선 자체 제작 숏폼 드라마인 ‘티빙 숏 오리지널’을 개시했다.

인공지능(AI) 기술 발달 덕에, 드라마·예능에 비해 제작 기간이 길다는 애니의 단점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김성용 청강문화산업대 애니메이션스쿨 교수는 “AI의 등장 이후 애니 제작 비용이 크게 절감되고, 속도도 빨라졌다. 장편 제작은 빨라야 4년 걸렸는데, 절반으로 단축됐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크리에이티브를 AI가 대체할 수 있느냐는 데에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부분의 업계에선 AI 활용 방식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주목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웹소설 원작의 대형 IP '나 혼자만 레벨업'과 웹툰 원작의 애니메이션 영화 '연의 편지'(2025). '나 혼자만 레벨업'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A-1 픽쳐스가 만들고, 한국과 미국, 일본이 합작 투자했다. 사진 카카오페이지, 스튜디오 N
하지만 한국 애니에 대한 주목도가 일본·미국 애니에 비해 낮은 것은 한계로 꼽힌다. 박기수 교수는 “한국 애니 산업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태”라며 “OTT 등장 이전까지 방송·극장 외에 공개할 곳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 애니 산업은 부가산업과 원천 IP에 대한 강점을 가졌다. 외국과 협업해 애니를 제작하거나 AI 기술을 도입해 기획 단계에 집중하는 등 전략적 사고로 한국 애니의 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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