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애니메이션 장르에 승부수를 걸고 있다. 일본 애니의 인기가 지속되고 K팝 소재 애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성공을 거두자 직접 스토리 개발을 주도하면서 오리지널 작품 생산에 공들이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시청자 유입을 위한 콘텐트 확보에서 나아가 작품의 세계관을 IP(지식재산권)화하는 데 힘을 쏟는 분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OTT계의 ‘공룡’ 넷플릭스는 지난달 21일 일본의 애니 제작사 마파(MAPPA)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스토리 개발부터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새 프로젝트들을 함께 진행한다. 마파의 새 애니들은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된다”면서다. 2011년 설립된 마파는 ‘체인소 맨’, ‘주술회전’, ‘진격의 거인 더 파이널 시즌’ 등 대형 IP를 다수 보유하며 빠르게 성장한 제작사다.
넷플릭스가 마파를 껴안은 것은 애니가 더 이상 ‘마이너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애니 시청률은 3배 증가했으며, 2024년에만 총 10억회 이상 시청됐다. 특히 ‘케데헌’은 공개 3개월 만에 넷플릭스 최초로 누적 시청수 3억회를 돌파하며 전 부문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국내 OTT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웨이브는 2024년 8부작 애니 ‘호러나이츠’를 오리지널 시리즈로 독점 공개했다. 티빙은 2021년과 2023년 애니 ‘신비아파트 특별판’에 이어 지난달 29일 동명 웹툰 원작의 애니 ‘테러맨’을 내놓았다. 모두 국내 제작사와 함께 만든 오리지널 작품이다.
이같은 개발투자는 앞서 인기 애니를 통한 신규 가입자 유입을 톡톡히 맛 본 데서 비롯됐다. 웨이브 관계자는 “2024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 지난해엔 ‘코렐라인’ 등 독점 제공 애니가 늘면서 신규 유입자가 확 늘었다”고 했다. 웨이브에 따르면 특정 애니를 시청하려는 신규 이용자들은 2024년 대비 2025년 20~30% 증가했다.
애초에 발품 팔아야 찾아볼 수 있던 ‘비주류 장르’ 애니를 양지로 끌어올린 게 OTT다. 특히 디즈니 플러스가 서비스를 시작한 2019년, 넷플릭스는 콘텐트 차별화를 위해 일본 애니를 적극 유통하기 시작했다. 김경수 영화평론가는 “과거엔 국내 TV나 극장 미공개 일본 애니를 보려면 불법사이트를 거쳐야 했는데, 이젠 OTT를 통해 현지와 ‘시차 없이’ 감상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귀멸의 칼날’(2019~), ‘주술회전’(2020~), ‘최애의 아이’(2023~) 등이 OTT의 성장과 함께 했다.
이렇게 형성된 팬덤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에도 화력을 더한다. 지난해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세계 흥행 수입 약 1000억엔(한화 약 1조원)을 돌파하며 글로벌 매출 1위의 성과를 냈고, OTT 시리즈도 역주행 흥행했다. 팬덤을 확보한 IP가 콘텐트 업계에서 선순환 생태계를 이루는 사례다.
콘텐트 업계는 애니의 잠재 파생력에 주목하고 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애니는 제작형식이 자유롭기 때문에 만화·웹툰·웹소설·게임 등 원천 IP를 연결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라고 설명했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애니는 2D 캐릭터가 움직인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판타지성’이 타 장르보다 크고 부가판권 수익을 올리기도 좋다”고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IP 거래 현황조사’에 따르면 국내 콘텐트 IP 산업의 규모는 2023년 약 33조2000억원에서, 2024년 약 62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드라마·예능에 비해 제작 기간이 긴 편인 애니의 단점도 인공지능(AI) 기술 발달 덕에 해소될 전망이다. 김성용 청강문화산업대 애니메이션스쿨 교수는 “장편 애니 제작은 빨라야 4년 걸렸는데, AI의 등장 이후 제작 비용도 절감되고 기간도 절반으로 단축됐다”면서 “인간의 크리에이티브를 AI가 대체할 수 있느냐는 데에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부분의 업계에선 AI 활용 방식을 적극 고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한국 애니에 대한 주목도가 일본·미국 애니에 비해 낮은 것은 한계다. 박기수 교수는 “한국 애니 산업은 OTT 등장 이전까지 방송·극장 외에 유통채널이 부족했다”면서 “외국과 협업 제작하거나 AI 기술을 도입해 기획 단계에 집중하는 등 전략적 사고로 한국 애니의 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