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국보’는 야쿠자 가문 출신인 주인공이 가부키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은 가부키 명문가 자제이자 라이벌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의 피를 원해. 나에겐 나를 지켜줄 그런 피가 없어.” 대를 이어 기예를 계승하는 ‘세습의 벽’ 앞에서, 노력만으로는 넘볼 수 없는 출발선의 차이에 대한 갈망과 절망이 응축된 대사다.
이 처절한 고백은 최근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오야가차(親ガチャ)’라는 단어와 맞닿아 있다. 캡슐 장난감 자판기를 뜻하는 ‘가차’(사진)에 부모(親)를 붙인 이 표현은, 자녀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을 ‘복불복 게임’에 빗댄다. 겉보기엔 한국의 ‘금수저·흙수저’ 논쟁과 닮았지만, 수저 계급론이 자산 규모에 초점을 맞춘다면 오야가차는 경제력은 물론 외모, 지능, 심지어 거주 지역까지 아우르는 보다 포괄적인 ‘운(運)’의 개념이다.
2021년 유캔 유행어에 오른 ‘오야가차’는 부모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사 운을 뜻하는 ‘조시(上司)가차’, 태어난 나라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구니(国)가차’까지 등장했다.
과거 일본 사회가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성실의 미덕을 강조한 데 비해 지금의 세대는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는 체념에 더 익숙해 보인다. 고착화된 저성장 구조 속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 현실에 일본 청년들은 실패를 괴로워하기보다 “가차 운이 없었을 뿐”이라며 냉소적인 방어기제를 선택한 셈이다.
그런 일본에서도 부모의 사랑만큼은 예외다. 한국의 ‘딸바보, 아들바보’에 해당하는 일본어 표현은 ‘오야바카(親バカ)’다. 사회적 문법으로는 ‘꽝’에 가까운 자식일지라도 부모의 문법 안에선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등 당첨’이다. 출발선의 불평등을 인정하는 숙명론과,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이 일본 사회에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