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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조선 탄광’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중앙일보

2026.02.08 07:14 2026.02.0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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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도쿄 특파원
“어머님, 저는 지금 일본 야마구치현이라는 곳에서 탄광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 밑으로 갱도가 연결돼 있고 바다 위를 지나는 어선의 통통통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정말로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꼭 탈출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제강점 시절이던 1942년 2월 3일 오전 9시 30분경, 해저탄광인 조세이 탄광에서 수몰 사고가 발생했다. 조선인 136명과 47명의 일본인이 뭍으로 나오지 못했다. 당시 사고로 희생된 김원달씨가 어렵사리 사고 전 고국에 있는 모친에게 보낸 편지엔 무장한 경비원이 지키는 삼엄한 포로수용소 같은 당시 상황이 묘사돼 있었다.

은폐에 급급했던 회사가 사고 뒤 갱구를 덮어버리면서 ‘조선 탄광’으로 불렸던 이곳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참혹한 조세이 탄광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든 이는 우베시 향토사학자이자 고교 역사 교사인 야마구치 다케노부. 1976년 우베지방사연구에 사고 기록을 꼼꼼히 남겼다. 시민단체(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이하 새기는 모임)가 생겨난 건 그로부터 15년 뒤의 일이다. 이들은 그로부터 35년간 탄광 흔적인 환기구(pier) 보존, 추모비 건립에 이어 유해 수습과 반환 운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일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84주기를 맞아 일본인 자원봉사 잠수사들이 조사에 나서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새기는 모임 주도로 한·일 유족이 참가한 가운데 추도식이 이뤄지던 지난 7일 정오경 비보가 날아들었다. 기존에 확인된 갱내 유골 수습에 나선 57세 잠수사 웨이수씨가 잠수 30분 만에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것이었다. 교통비도, 보수도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였다. 전날 회견에서 위험성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같은 다이버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매우 감명받았다”고 담담히 참가 이유를 밝혔던 그였다. 그의 사망 소식은 빠르게 전파를 탔다. 지난해 8월 두개골 등 유해 4점을 찾아낸 데 이어 전날 DNA(유전자) 감식에 필요한 치아가 확인되는 두개골 1점 수습 직후에 벌어진 참사였다. 새기는 모임은 오는 11일까지 진행하려 했던 일본인 다이버와 해외 다이버들의 조사 작업을 중단하고 애도에 들어갔다.

지난달 한·일 정상이 DNA 감정 추진을 약속하면서 번졌던 기대감은 눈물로 바뀌고 있다. 귀중한 한 명의 생명이 희생된 지금, 조세이 탄광은 과거가 아닌 현재형의 문제로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오랜 시간 잊혀져 있던 희생자들을 인정하고 그 유해를 찾아내는 일은 우리 사회가 인간의 죽음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책임져야 하느냐는 묵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김현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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