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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조의 혁신의 우주경제] 우주로 향한 집념, 인류의 지평 넓히는 억만장자

중앙일보

2026.02.08 07:16 2026.02.0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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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지난해 11월,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 발사대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쌍둥이 화성 탐사선 에스커페이드를 품은 블루오리진의 뉴글렌 로켓이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7분 후, 분리된 1단 로켓이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드론쉽 ‘재클린’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 순간은 한 남자에게는 단순한 로켓 발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25년 전 시애틀의 작은 창고에서 비밀리에 시작된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된 순간이었고,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가 독주하던 재사용 로켓 시장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베이조스 재사용발사체 성공
소년 시절부터 ‘우주병’에 ‘감염’
아마존 이어 블루오리진 창업
2030년 민간우주정거장 구상

블루오리진의 대형 재사용 발사체 뉴글렌이 지난해 11월 미국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됐다. 이날 발사에서 1단 회수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AFP=연합뉴스]
18세 소년의 ‘우주 진출’ 선언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바다. 이글이 착륙했습니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의 이 한 마디가 전 세계로 중계되던 그 순간, 뉴멕시코 앨버커키의 한 거실에서 다섯 살 소년이 TV 화면에 못을 박은 듯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제프 베이조스. 이 소년에게 그날 밤은 평생을 지배할 ‘우주병’에 감염된 운명의 순간이었다. 마이애미 팔메토 고등학교 졸업식, 졸업생 대표로 연단에 오른 베이조스는 청중을 놀라게 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지구는 아름답지만 유한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우주로 나가야 합니다. 저는 언젠가 수백만 명이 우주 정거장에서 일하고, 소행성에서 자원을 채굴하며, 화성과 달에 도시를 건설하는 미래를 봅니다. 그리고 지구는 인류가 태어난 소중한 요람으로, 국립공원처럼 보존될 것입니다.” 이 연설은 그다음 날 마이애미 일간지에 기사화되었다.

1982년, 프린스턴대에 입학한 베이조스는 운명적인 만남을 맞이한다. 바로 그가 고교 시절부터 탐독했던 『The High Frontier(하이 프런티어)』의 저자, 제러드 K 오닐 교수였다. 오닐 교수는 거대한 실린더 형태의 우주 서식지를 제안한 선구자로, 베이조스에게는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베이조스는 내 세미나에서 가장 열정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오닐 교수는 생전에 남긴 기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는 단순히 이론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것을 구현할 방법을 끊임없이 질문했죠. ‘교수님, 오닐 실린더를 건설하려면 얼마의 자본이 필요할까요?’ ‘무중력 환경에서 제조업을 시작한다면 어떤 제품부터 만들어야 할까요?’ 그의 질문은 항상 실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베이조스는 곧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물리학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다. “우주로 가려면 먼저 지구에서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은 컴퓨터가 지배할 것이다.” 친구들에게 남긴 이 말은 훗날 아마존 창업의 복선이 되었다.

김영옥 기자
지구의 성공을 우주의 꿈으로
서른 살의 베이조스는 월스트리트의 고소득 직장을 떠나 시애틀 차고에서 아마존을 창업했다.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불과 몇 년 만에 ‘모든 것을 파는 상점’으로 진화했고, 베이조스를 세계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별을 향하고 있었다. 2000년, 그는 조용히 블루오리진을 설립했다. 회사의 문장에 새겨진 라틴어 모토 ‘그라디팀 페로키테르(Gradatim Ferociter)’는 ‘한 걸음씩, 맹렬하게’라는 뜻으로,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확실하게 전진하겠다는 그의 철학을 담고 있었다. 뉴글렌 로켓의 개발은 베이조스의 우주 비전을 실현할 핵심 열쇠다. 높이 98m, 직경 7m의 이 거대한 로켓은 45t의 화물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BE-4 엔진은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해 환경친화적이면서도 강력한 추진력을 자랑한다.

베이조스의 야망은 로켓 발사에 그치지 않는다. 2021년 ‘오비탈 리프’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그가 구상하는 오비탈 리프는 2030년대에 운영을 시작할 민간 우주정거장이다. 이곳은 단순한 연구 시설이 아니라 ‘복합 비즈니스 파크’다. 베이조스는 이렇게 말했다. “무중력은 인류가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가장 귀중한 자원입니다. 지구에서는 불가능한 초고순도 반도체, 혁신적인 신약, 완벽한 광섬유를 우주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오비탈 리프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물론 머스크와 베이조스의 우주 야망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구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화성으로 도망가려는 억만장자들”이라고 직격했다. 환경운동가들은 로켓 발사가 야기하는 탄소 배출을 지적한다. 하지만 베이조스는 이런 비판에 정색하며 말한다. “우주 개발과 지구 보호는 상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호보완적입니다. 우주 태양광 발전은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소행성 채굴은 지구의 자원 고갈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요람을 떠나는 인류의 대장정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다. 하지만 누구도 영원히 요람에 머물 수는 없다.” 러시아의 로켓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의 말이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정말로 요람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우주는 이제 소수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언젠가 우리의 후손들이 오닐 실린더에서 태어나 지구를 ‘조상들의 고향 행성’으로 바라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대장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대한민국도 이 대장정에 적극 참여하면 좋겠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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