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그의 1월 공개활동은 취임 이후 가장 많은 15회를 기록했다. 취임 첫해인 2012년 실상 파악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때와 숫자상으로 같다. 8차 노동당 대회가 열렸던 2021년 20회를 기록했지만 당대회 관련 활동을 제외하면 2차례에 불과하다. 북한은 조만간 9차 당대회를 열 예정인데, 김 위원장이 당대회나 핵 실험, 한국·미국·중국과 정상회담 등 주요 ‘사건’을 앞두고 두문불출하던 이전 모습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북한은 새해 첫날 신년사(김일성 주석)나 관영 매체의 공동 사설(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통해 한 해 정책 목표를 제시했지만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김정은의 복잡한 속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다 공개활동 등 민심 챙기며
지도부에 국제정세 숙지시켜
코드 맞는 트럼프와 회담 여부
향후 두 달이 방향 설정 분수령
여전히 발목 잡는 경제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직후엔 신년사를, 그리고 최근에는 12월 말에 개최하는 노동당 전원회의 연설로 신년사를 대신했다. 이전과 달리 지난해 12월 12일 일찌감치 연말 전원회의를 마치고, 신년사 격의 언급이 없었던 건 아마 9차 당대회의 조기 개최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당대회를 예상보다 늦춰 2월 하순에 열기로 하면서 북한 정권 출범 이후 신년사를 ‘거르는’ 특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대신 김 위원장은 신의주 온실종합농장·평양화성지구 4단계 건설 현장(경제), 군수공장·신형 방사포 발사 현장(군사), 설맞이 공연(사회) 등을 챙겼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 몇 시간 전 극초음속 미사일을 쏘는 현장을 찾아 대중 견제 심리도 내비쳤다.
그가 영하 15도를 밑도는 날씨에도 당대회 준비 대신 현장으로 달려간 건 8차 당대회(2021년)에서 제시했던 성과를 현장에서 확인하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당대회는 분야별로 지난 5년을 결산하고, 다음 5년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최고 정치행사다. 북한은 2021년 국방·경제 등 분야별 목표를 제시했는데, 무인기나 인공위성, 미사일, 핵탄두 소형화 등 군사 분야에선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측면이 있다. 2024년 제조업 분야가 전년 대비 5.9% 증가하고, 경제성장률도 3.7%를 기록(한국은행 추정치)하는 등 경제 상황도 플러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경제 수준은 기대를 밑도는 게 현실이다. 대북 제재와 내부 자원 부족으로 북한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평양종합병원이나 갈마 해양 관광지구의 준공을 수년간 미루다 지난해 달성한 게 북한 경제의 한계를 보여준다. 평양과 지방의 경제 수준 차이도 여전하다. 김 위원장이 최근 지방의 경제 현장, 특히 준공 단계의 공장 방문은 성과를 포장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당대회에서 내세울 ‘거리’ 찾기에 나섰다는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더 복잡해진 국제정세 북한은 ‘자주’와 ‘주체’를 강조하는 나라다. 때문에 국제사회의 변화에 둔감한 사회로 인식되곤 한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적어도 지도부만큼은 외부 동향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당과 정부의 주요 간부들이 ‘참고통신’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아침 배부되는 외신이나 해외 동향을 정리한 국제정세자료를 의무적으로 숙독하는 이유다. 허가받은 간부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수시로 바깥소식을 챙기기도 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듯하지만 보이지 않지만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압송하고, 이란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북한에게 남의 일로만 여기기 어려운 장면이다. 다음 순서가 자신들일 수 있다는 판단 속에 대응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복잡한 계산과 긴박한 움직임 역시 북한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지난해 6월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했던 미국은 최근 항공모함 전단을 동원해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이 ‘강경에는 초강경’이란 입장으로 핵을 앞세우지만 미국의 힘에는 역부족이란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북한 편? 여기에 최근 북한의 계산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인도적 사업 17건의 대북 제재 면제를 승인한 것이다. 유엔 대북제재를 미국이 주도하고, 이재명 정부가 대북 유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한 공동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지원’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우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외부 의존에 선을 긋고 있어 북한이 쉽게 호응할지 미지수다. 북한이 이를 대북 제재 해제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즉각 대화 테이블에 복귀할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핵무기는 거래 대상이 아니라며 핵과 미사일로 미국 본토 공격할 수 있는 수준을 거의 완성해 가는 북한 입장에선 ‘판돈’이 작다고 여길 게 뻔하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의 구애에 이어 대북제재 해제 움직임과 관련해 핵과 미사일을 내세운 자신들의 전략이 먹혔고, 이제 꿩의 알을 확보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남은 임기를 고려하면 오히려 쫓기는 건 북한이란 점을 직시해야 한다. 트럼프의 임기가 2년 11개월가량 남아 있지만 더는 연임이 불가능하다. 마지막 해는 차기 선거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로 북한에 눈길을 줄 틈이 없다. 그렇다면 실제 임기는 2년 남짓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2019년 2차 북·미정상회담 때와 달리 김 위원장에게 코드가 맞는 트럼프와 다음 기회가 없는 셈이다. 중국이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 시 회담 결렬을 위협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방중 기회에 김 위원장과 회동을 원하고 있다. 북한에 당대회보다 중요한 게 향후 2개월 대미 방향 설정인 것이다. 숙원이던 북·미 관계를 푸느냐, 허리띠를 졸라맨 행군을 지속하느냐의 갈림길이 될 수 있어서다. 북한은 꿩도 먹고, 알도 먹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이미 확보한 알마저 빼앗길 수 있는 게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