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상, 주미대사 인선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한·일 관계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묻지마 대일 강경론에 장단만 맞췄던 분 아닙니까.”
지난해 8월 회사 주변 식당에서 만난 일본 유력 언론의 한국 전문가가 던진 말이다. 평소 한국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그는 “너무 걱정스럽다”며 주미대사로 막 내정된 강경화 대사에 대해 박한 평가를 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맹활약 중인 야마다 시게오(山田重夫) 주미 일본대사를 거론했다. 야마다가 누구길래. 일본 외무성 내 손꼽히는 미국통인 그는 트럼프 1기 때 일본 총리실 국가안전보장국 심의관으로 미·일 관계를 조율했다. 2023년 말 주미대사로 부임했고, 트럼프 2기 출범 뒤 워싱턴 정가를 누비며 관세 협상을 주도했다. 일본 내에선 “마지막 순간 트럼프 앞엔 아카자와 료세이(赤澤亮正) 경제재생상이 앉았지만, 실제론 야마다가 밥상을 다 차렸고 아카자와는 워싱턴행 비행기만 탔을 뿐”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런 야마다와 강 대사를 대비시키는 일본 언론인의 말에 “(강 대사는) 아직 부임도 하기 전인데 과도한 걱정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트럼프 관세 인상 낌새 못 챈 정부
“외교 실패 아니다” 억지 변명 대신
외교 역량에 구멍 뚫렸나 살펴야
그런데 그저 그러려니 했던 지난해 여름의 대화를 떠올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합의했던 상호관세 15%를 25%로 올리겠다고 하면서다. 한국 정부는 허를 찔렸다지만 사실 몇 차례 사전 경고가 있었다. 미국 디지털 기업 차별 우려가 담긴 주한 미대사관의 서한, 김민석 총리-JD 밴스 부통령 워싱턴 면담에서 언급된 쿠팡 사태와 손현보 목사 사건 등이다. 상식적으로 미국 정부 내엔 대통령 주변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미리 포착한 이들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우리 주미 대사관이 미리 파악한 단서는 없어 보인다. “트럼프가 경기 중에 골대를 옮겼다”는 경악과 비명이 대사관의 첫 반응이었다고 한다.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관세 협상이 사달이 나 안보 협의를 흔들고 있다”는 청와대 안보실장의 고백은 이례적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에 관세 인상을 통보한 날 트럼프는 “미·일 동맹의 미래가 눈부실 것”이란 메시지를 냈다. 일본 총선 이틀 전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에 대한 전폭 지지 입장을 밝혔다. 광폭의 미·일 관계와 위기 속 한·미 관계의 극적인 교차가 미묘하다.
주미 대사관이나 정부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천방지축 트럼프를 어떻게 예측하느냐고 억울해할 수 있다. 이번 정보 공백과 경보 부작동의 책임을 정식 부임 4개월 된 대사 한 사람에게 묻기도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 내 중차대한 기류 변화를 체크조차 못 한 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하라고 외교부를 두고 비싼 세금을 들여 대사를 파견하는 것이다. “우리도 몰랐지만, 미국 정부 내에서도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외교 실패가 아니다”는 변명은 ‘우리가 잘못했다’는 실토로 들린다.
정부는 주미 대사관이 문제인지, 아니면 국가 외교 역량에 구멍이 뚫렸는지를 진단해야 한다.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외교부 주류 강제 교체의 폐해가 아닌지도 이번 기회에 살펴야 한다. 전 정권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에 대한 밀어내기는 새 정부 출범 8개월이 지난 현재도 진행 중이다. 동맹파 대 자주파의 갈등과 나눠먹기가 외교관 인재 풀을 좁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진영과 이념을 떠나 국익을 위한 최정예 진용을 꾸려야 한다. 보직을 잃은 에이스 외교관들이 일할 방을 잡지 못해 이 건물 저 건물을 전전한다는 풍문이 그저 ‘헛소문’이길 바란다.
일본은 다르다. 정권이 바뀌고, 총리가 바뀌어도 국가를 위해 일하는 직업 외교관들의 위상은 굳건하다. 참고로 2009년 일본의 민주당이 전후 첫 정권 교체에 성공했을 때도 주미 대사는 바꾸지 않았다. 반대로 2012년 말 자민당이 그 정권을 탈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