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희토류 독립을 위한 일전(一戰)을 선포했다. 전 세계 정제(精製) 시장의 90% 이상을 독점한 중국의 무기화에 대응해 칼을 빼들었고, 55개국이 가세했다. 4일 워싱턴 미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핵심 광물 장관급 회의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가격이 급락해도 동맹국 기업이 망하지 않도록 가격 하한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의 희토류 중시 전략으로
중, 최고 기술로 미국 산업 초토화
미,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로 반격
한국, 갈등 속 ‘희토류 폭탄’ 경계를
미국은 지난해 4월 중국에 허를 찔렸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45% ‘관세폭탄’에 맞서 희토류 수출통제로 반격했다. 미국의 방산·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모든 산업이 비명을 지르자 트럼프는 꼬리를 내렸다. 상호관세를 30%로 낮추기로 시진핑과 전격 합의하고 ‘90일간 휴전’을 선언했다. 호승심(好勝心)이 강한 트럼프는 120억 달러를 투입해 핵심 광물을 전략적으로 비축하는 ‘프로젝트 볼트(Project Vault)’를 2일 직접 발표했다. 오죽했으면 “1년 전과 같은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했을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핵심 광물 전략이 경쟁국인 중국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 모델을 닮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USA 레어 어스’ 등 민간 채굴업체에 자금을 지원해 주고 주식 일부분을 가져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든 중국의 뒷덜미를 잡아야 하는 트럼프의 초조한 심리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강의 희토류 생산국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이라는 중국의 거인(巨人)을 만난 것이다. 덩샤오핑은 1992년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선언했다. 희토류가 단순한 ‘광물’에서 ‘국가의 전략적 자산’으로 격상된 것이다. 이때부터 희토류 관련 기술개발은 국가 프로젝트가 됐다. 덩샤오핑이 이끄는 중국 정부는 그 전부터 베이징대 화학교수 쉬광센(1920~2015)에게 희토류 정제 연구를 시켰다. 쉬광센은 용매 추출법(Solvent Extraction)을 개발했다. 희토류 원소 17종을 고순도로 분리하는 세계 최초의 대량 정제 기술이었다. 1990년대에 중국은 고순도 희토 제품을 대량 생산해 세계시장에 싼 가격으로 쏟아냈다. 중국 이외의 희토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다. 이제 중국이 희토류 공급 수도꼭지를 잠그면 미국의 주력 산업은 올스톱된다. 희토류가 강력한 무기가 된 것이다.
미국은 후회하고 있다. 광물장관 회의에서 J D 밴스 부통령은 “첨단 기술과 데이터센터가 중요하지만 경제는 여전히 실물 자원에 의해 움직인다. 핵심 광물보다 더 실물적인 것은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우리는 새롭고 화려한 것에만 매료돼 낡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것들은 외주화했다. 마운틴 패스 (희토류)광산과 핵심 광물 대부분이 쇠퇴하고 사라지도록 방치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경제적 안보와 미래까지 외주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미국이 반격에 나섰지만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기술과 인력의 생태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정제 시설을 복구하고 수율을 안정화하는 데 5~7년이 걸린다.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인 18~24개월은 희망사항이다. 호주 광산 산업 전문 분석기관인 ‘디스커버리 얼러트’는 “미국 전략이 채굴에만 치우쳐 있고 정제 기술 격차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에너지 전문 로펌 ‘베이커 보츠’도 “중국은 태동하는 미국 정제 기업들을 도산시킬 수 있는 ‘약탈적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희토류 산업이 수렁에 빠진 것은 정치 리더십의 오판(誤判) 때문이다. 덩샤오핑이 희토류를 전략산업으로 격상시켰을 때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거꾸로 갔다. 까다로운 환경규제를 들이댔고, 중국의 저가 공세에 기업이 줄도산하고 마운틴 패스 광산이 폐광되는 것을 방치했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S&P는 미국의 허가 절차가 까다로워 광산을 건설하는 데 평균 29년이나 걸린다고 했다. 규제와 소송에 익숙한 법률가들이 정부와 의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국은 공학도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2002년에는 최고 의결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이었다. 중국의 제조업 종사자는 1억 명이 넘어 1300만 명인 미국의 8배다. 미국이 중국과의 희토류 전쟁에서 단숨에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봉쇄망인 ‘포지(지전략적 자원 협력 포럼) 이니셔티브’의 의장국이 된다. 미국의 ‘관세 폭탄’도 버거운데 중국의 ‘희토류 폭탄’까지 맞으면 감당할 수 있을까. 살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날아가는 철새들은 잠을 잘 때도 한쪽 눈은 뜨고 있다. 한국의 처지는 저 철새와 같다. 항상 깨어서 위험에 대비하고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처럼 위험에 눈감고, 편을 가르고 싸우기만 하면 공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