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 지난 7일 오후 2시,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보르미오. 한적한 시골 마을의 버스 정류장이 각국 언어로 뒤섞였다. 성서 속 바벨탑 건설 현장이 이랬을 것 같다. 이탈리아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까지 뒤섞여 터져나오는 소리는 하나같이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향한 볼멘소리였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경기 등이 열리는 리비뇨로 가는 길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했다.
이번 올림픽이 열리는 곳을 모두 가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막상 겪어 보니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못할 여정이다. 밀라노를 기점으로 코르티나담페초와 리비뇨를 오간 총 왕복 거리는 1300㎞, 길 위에서 허비한 시간만 꼬박 23시간에 달한다. 뜬구름처럼 들리던 이번 대회의 모토 ‘분산 개최’를 몸소 겪어 보니 남은 것은 훵한 눈과 지독한 피로, 경직된 근육뿐이었다. 올림픽 개최지가 아니라 내 몸과 영혼이 분산된 것 같았다. 결국 한 주 동안 두 도시를 오가며 절감한 것은 세 권역이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기엔 너무나 멀고 판이하다는 현실이었다.
고난은 개막 전인 지난 2일, 코르티나담페초로 향하는 길부터 시작됐다. 1일 저녁 밀라노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다음 날 오전 6시에 길을 나섰다. 이탈리아는 처음인 데다 이동 거리마저 워낙 길어 잔뜩 긴장했다. 개막 전이라 조직위원회의 전용 애플리케이션은 무용지물이었고, 구글 지도에 의지해 복잡한 이탈리아 교통 상황과 눈치싸움을 벌이며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8일 열리는 스노보드 이상호의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7일 나선 리비뇨행은 더 고단했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기차로 티라노까지 2시간30분, 다시 버스로 보르미오까지 1시간, 그리고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타 리비뇨로 향하는 경유의 연속이었다. 특히 보르미오 승강장에서의 기다림이 가장 괴로웠다. 20~30분이면 온다던 버스는 함흥차사였고, 영하의 칼바람이 부는 산악지대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밀라노의 온화한 날씨만 믿고 얇게 입고 나온 나 자신을 원망하며 한 시간을 버틴 끝에야 겨우 리비뇨행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이번 대회는 분산 개최를 표방한다. 분산 개최의 가장 큰 목적은 비용 절감이다. 외신이 추정한 이번 대회 예산은 약 9조원으로, 2년 전 파리 올림픽의 12조원, 2018년 평창 대회의 14조원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이번 대회를 위해 아이스하키장과 슬라이딩센터만 새로 지었을 뿐이다. 지역 균형발전도 고려했다. 대도시에서만 올림픽이 열리면 지방 도시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4년 전 베이징 대회도 만리장성 너머 장자커우에서 설상 경기를 치렀고, 8년 전 평창 대회도 강릉과 함께 개최했지만 이번처럼 두 도시를 대회명에 병기하지는 않았다. 한 주 동안 코르티나담페초와 리비뇨를 오가니 왜 ‘공식적’ 분산 개최를 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세 도시 모두 생활권이 다르고 거리도 한참 떨어져 있어 밀라노라는 하나의 이름으로는 포괄할 수 없다.
코르티나담페초에서 리비뇨까지 가려면 대중교통으로 무려 18시간이 걸린다. 외신들이 이번 대회를 두고 “교통 악몽”이라 꼬집고, “우버가 최고 수혜자”라고 비꼬는 이유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뉴욕타임스의 지적대로 관람객들에게 이 여정은 매일이 나라를 가로지르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나 다름없다. 공식 출입증이 있는 취재진도 이토록 고된데, 일반 교통수단에만 의지해야 하는 관람객들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길일까. 지속가능성이라는 이상을 좇다가 현실적인 접근성을 놓친 우(愚)를 범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번 올림픽을 통해 분산 개최의 명암을 절감하는 분위기다. 커스티 코번트리 위원장은 “지속가능성을 위해 분산 개최를 하면서도 복잡함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밀라노에서 코르티나담페초까지 왕복 12시간, 다시 밀라노에서 리비뇨 왕복 11시간. 이 지독한 노정의 끝에서 기자를 위로한 것은 차창 밖의 풍경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고생시킨 이탈리아 북부의 험준한 자연은 지독한 고생을 잊게 할 만큼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코르티나담페초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마주한 알프스 설산의 비경은 한 시간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고, 티라노로 향하며 만난 코모 호수는 알프스의 푸른 보석처럼 빛났다. 비경 덕에 뼈아픈 고생조차 사치스러운 취재기로 기억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