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ㆍ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림)의 자세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설득력 있는 협력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청와대 비서실장실에서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대 60조원 규모로 예측되는 캐나다 차기 잠수함 도입사업(CPSP) 수주전의 전망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비서실장에 발탁 때까지 강 실장에겐 ‘전략통’‘현장형 참모’ 등 정무 기능에 주목한 수식어가 익숙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그를 전략경제협력(이하 방산) 특사로 유럽ㆍ캐나다ㆍ중동에 파견하는 등 다용도로 쓰고 있다.
이 대통령은 참모들에게서 인사ㆍ정책ㆍ외교 현안들에 대한 보고가 들어올 때면, 입버릇처럼 “강 실장도 검토한 건가요”라고 묻곤 한다고 한다. 야당은 한때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겨냥해 ‘그림자 실세론’을 폈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250일을 지나는 시점에서 강 실장이 실세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이제 찾기 어렵다.
지난달 22일 정청래 대표가 느닷없이 조국혁신당과 통합을 발표해 내홍이 커질 때도 더불어민주당에선 “강훈식이 있었으면 여기까지는 안 왔을 것”(3선 의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강 실장은 지난달 26일~31일 방산 특사로 캐나다와 노르웨이를 누비고 있었다. 인터뷰도 방한한 잠수함 사업의 키맨 스티븐 퓨어 캐나다 국방조달 특임장관을 만난 직후에 진행됐다.
Q : 잠수함 수주, 희망적인가
A : “결정 요소는 세 가지다. 성능,안보 협력,산업ㆍ경제 협력이다. 독일도 캐나다가 요구한 성능은 만족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운영 중인 잠수함을 캐나다 관계자들에게 눈으로 확인시켰지만, 독일은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캐나다인들에게 유럽은 ‘고향’이고, 전략 무기를 안보의 큰 틀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밖에서 조달하는 건 적잖은 부담이다. 그래서 산업ㆍ경제 협력 패키지가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캐나다는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이 모국으로 회귀하는 현상)으로 인한 일자리 상실들의 문제를 겪고 있다. 상황에 맞는 설득력 있는 패키지가 필요하다.”
Q : 왜 비서실장이 방산 이슈를 주도하나.
A : “방산 세계 4강 도약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비서실장이 해보라’고 해서 맡게 됐다. 이제 방산 수출은 성능이 좋다거나 로비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수조원어치의 무기를 사는 나라는 반드시 ‘그럼 우리한테 뭘 투자할거냐’고 묻는다. 다양한 기업과 정부 각 부처가 협력해 이 답을 찾고, 금융 지원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상대국의 경제ㆍ금융 상황과 정치적 환경, 국민 정서도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방산 의사결정은 수출국과 수입국 모두에게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특히 왕정 국가들에선 대통령의 뜻을 확인할 수 채널을 원한다.”
Q : 방산 육성을 위해, 장기적으로 필요한 것은.
A : “방점을 ‘방위’에서 ‘산업’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려면 군의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히 확보되고 신중히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에 기반한 기술과 관련 스타트업이 발전할 수 있다.”
Q : UAE 실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행정청장이 방한 때 ‘형님처럼 생각하는 강훈식’이라고 표현한 게 기사가 됐다.
A : “칼둔과는 4번 만났다. 지난해 11월 정상회담 전에 먼저 UAE에 갔을 때 칼둔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대통령이 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길래 ‘내란으로 국민의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첫 국빈 방문이니 한국이 정상 국가로 세계 무대에게 컴백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의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UAE는 실제로 파격적인 환대를 했다.”
Q : 대통령이 최근 강조하는 ‘창업사회’ 드라이브도 비서실장 몫이라던데.
A : “대선 때부터 대통령과 나누는 대화의 가장 큰 화두가 ‘성장’이다. 집권 후 국가를 정상화하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라는 무거운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협력과 지원의 주된 대상이 자동차ㆍ반도체 등 기간 산업을 담당하는 대기업 일 수밖에 없었다. 한 고비를 넘긴 시점에서 이후 성장 전략은 중소기업과 지방 그리고 청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데 대통령과 뜻이 맞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초고속 인터넷 도입과 함께 벤처 붐을 만들었다면, 이제 AI라는 큰 물결과 함께 미래에 대한 투자가 이뤄질 타이밍이라고 보고 있다.”
Q : 대통령은 연구자들에게 ‘실패할 자유와 권리’를 주겠다고 했다.
A : “도전할 수 있는 유인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실패가 자산으로 축적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5000명 창업 인재 발굴을 목표로 올 3월부터 시작하는 ‘모두의 창업’ 오디션이 전자를 위한 것이라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실패가 유의미했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구조를 짜고 있다. 지역사회를 배경과 자산으로 삼는 창업가 발굴도 ‘모두의 창업’의 큰 목표다. ”
충남 아산을에서 3선 의원을 지낸 강 실장이 대전ㆍ충남 통합 단체장에 도전할지는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4개월 남긴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다. 민주당에선 “강 실장이 나서면 경선이 무의미하다”(재선 의원)는 말이, 국민의힘에선 “강훈식이 안 나와야 방법이 생긴다”(초선 의원)는 말이 나온다.
Q : 강훈식을 위한 통합이란 말이 있다.
A : “그럼 대구ㆍ경북, 광주ㆍ전남 통합은 누굴 위한 통합인가. 대전ㆍ충남 통합을 주도하던 야권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많이 웃었다. 광역단체 통합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은 지방 육성을 위한 대전제다. 독일에는 인구 500만 명 이상 대도시권이 5개 있고, 이들 지역이 경제·금융·정치 측면에서 국가의 거점 역할을 한다. 그간 광역 통합은 대통령과 중앙 정부의 반대로 어려웠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과 중앙 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덜어내겠다고 각 부처를 설득하고 있지 않나. 자신의 기득권 사수를 위해 통합에 반대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통합이 좌절된다면 그들은 오랫동안 비판받게 될 것이다.”
Q : 위성락 안보실장이 관세 재인상 리스크를 제기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 3실장 협력에 문제가 있나.
A : “문제는 없다. 위성락 실장과 김용범 정책실장 모두 관료로서 관록있는 실력자다. 지난해 관세 협상 국면에서 이런 식의 협상이 뉴노멀이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뭘 잘못해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무의미해진 게 아닌 거처럼 지금도 지난해 합의사항 중 뭘 어겨서 문제가 된 게 아니다. 입법이 늦어지니 다시 이야기하자는 것 아닌가. 지난해 큰 파고를 넘는 동안 3실장 체제는 잘 가동됐고, 이제 또 다른 파도가 온 것이다.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일이다.”
A : 여야가 합의한 3월 9일까지만 입법이 이뤄지면 충분한가.
A : “미국이 관보 게재를 준비하는 건 사실이고,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제기한 문제가 입법 속도였고, 여야가 합의해서 통과시키기로 했으니 정부는 국회를 믿고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노력들을 미국에 최대한 알리면서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
Q : 최근 부동산과 관련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잦고 강하다.
A : “서울의 부동산 문제가 망국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지 않나.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성공하느냐는 역대 정부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코스피 5000을 달성하는 등 대체 투자 수단이 부상했는데도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는 걸 무시할 순 없다. 이 대통령이 문제를 돌파하겠다고 판단한 거다. 그동안 일몰을 약속해 놓고도 유예의 유예를 반복해 온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유예는 없다’는 선명한 신호를 준 건 그 시작이다. 보통 이사는 3~4개월 전에 준비해야 하니까 불확실성을 미리 제거한 것이다.”
Q : 다주택 고위직들이 집을 팔겠다고 나서는 등 문재인 정부 데자뷔 같은 느낌도 있다.
A :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책 수단이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시행령으로 모든 걸 해결해보려다 문제가 커졌다. 이재명 정부는 행정적 조치뿐 아니라 입법적 조치도 가능하다. 부동산 문제가 바늘구멍 만한 빈틈만 있어도 뚫고 나올 정도로 압력이 큰 사안이라는 점을 이 대통령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분출을 막고 압력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매각을 사실상 강제하는 게 아니라 생산적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할 방안을 찾자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다. 시장에서도 무조건 버티는 것보다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르는 게 낫다는 신뢰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 것 아닌가.”
강 실장은 이 대통령이 도전했던 3번의 대선에서, 경선 때부터 한 배를 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2017년 때는 안희정 캠프에 몸담았고 2021년엔 대선경선기획단장을 맡아 중립을 지켰다. 이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부터 강 실장을 옆에 두기 위해 여러 차례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 “아끼다 똥 되겠어”였다. 250일간 참모로서 지켜본 이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강 실장은 “최근 별세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3실(진실ㆍ성실ㆍ절실)론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
“진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한다. 밥이 없어 굶게 하지는 않겠다는 ‘그냥드림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도, 소득 층위별로 색깔이 달랐던 일부 지자체의 민생소비쿠폰을 보고 화를 낸 것도 그런 면모다. 성실. 정말 하루하루를 오직 공적인 업무에만 사용한다. 관저로 가서도 잠시 쉬다가 밀린 보고와 자료들을 다 읽고 새벽에 참모나 장관들에게 텔레그램으로 지시하는 일이 잦다. 절실. 강박인가 싶을 정도로 성공한 정부를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다가 안 되면 말자’는 게 없다. 주식시장 정상화가 그랬고, 부동산 문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