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 기준점은 2018년 전원합의체 선고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재차 나왔다. 2018년 판결 선고 전까지는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는 지난해 12월 24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이 일본 기업 니시마츠건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 판단했다.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2018년 10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기준으로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 소멸 여부를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피해자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함경북도 부령군 니시마츠건설의 전신에서 강제동원 돼 노역하다가 사망했다. 유족들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주장하면서 2019년 4월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단에서는 1, 2심이 모두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면서 청구권 소멸 시효 기산점을 언제로 볼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민법 제766조는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손해를 인지한 날로부터 3년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간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된다고 규정한다. 다만 객관적으로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고 시효가 정지된다. 이후 장애사유가 해소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1심은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기산해 청구권 행사 기한인 3년이 지났다고 판단하고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효하다고 판단하면서 신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파기환송했다.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관한 대법원의 첫 해석이었다. 신일본제철의 재상고로 원고 승소가 2018년 10월 30일 확정됐으나 1심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관한 법리는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그대로 유지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2012년 대법 선고만으로 유족들의 권리행사 ‘장애사유’가 해소됐다고 볼 수 없다면서 2018년 대법 판결을 기준으로 유족에게 각각 2000만원, 1333만3333원 등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신일본제철 재상고 사건 판결을 통해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적 견해를 최종적으로 명확하게 밝혔다고 판시했다. 청구권 소멸 여부를 넘어 행사 기간 범위를 적극 해석한 결과다.
재판부는 “2012년 판결은 파기환송 취지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로서는 2012년 판결 이후에도 개별적으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을 통해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어 “2018년 전합 판결 선고로 비로소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법적 구제가능성이 확실하게 됐다고 볼 수 있고 유족들에게는 그때까지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일본 건설사 구마가이구미가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에게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서도 2018년 10월 선고를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 시작점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2023년 12월 21일 피해자와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2018년 10월 전합 선고 때까지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