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난중일기』1597년 9월 15일(명량대첩 전날)
간담이 타고 찢어지고 또 타고 찢어졌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하늘이 정한 이치가 아니냐. 그런데도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치가 어찌 이렇게 어긋날 수 있느냐. 하늘과 땅이 캄캄하고 한낮의 해도 빛이 바랬다. 불쌍한 내 어린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하늘의 재앙이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목 놓아 서럽게 울부짖을 뿐이다. 하룻밤이 1년 같다. 하룻밤이 1년 같다.
-『난중일기』1597년 10월 14일
지금 신에게는 전선이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막고 싸운다면 오히려 해낼 수 있습니다.
- 이분,『이충무공행록』
자려 해도 잠들 수 없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난중일기』1593년 7월 1일
어머님을 모시고 같이 한 살을 더했다
이는 전쟁 중이라도 행복한 일이구나
-『난중일기』1594년 1월 1일
비가 아주 많이 쏟아졌다. 모든 일행이 다 꽃비에 젖었다.
-『난중일기』1592년 2월 23일
아침에 흰 머리카락 십여 가닥을 뽑았다.
하얗게 머리가 세는 것을 어찌 꺼릴까.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난중일기』1593년 6월 12일
달빛은 낮과 같이 밝았다.
출렁이는 물빛은 하얀 비단 같았다.
-『난중일기』1593년 8월 17일
어머님께서 평안하시다고 했다. 그러나 아들 면은 많이 아프다고 했다.
가슴이 지독히 탔다. 가슴이 지독히 탔다.
-『난중일기』1594년 6월 17일
아침부터 흐렸다. 늦게 큰비가 내렸다. 농민의 바람을 가득 채워주었다.
기쁘고 행복한 것이 말할 수 없구나. 비가 오기 전에 훈련용 화살
5~6순을 쏘았다. 비가 밤새 그치지 않았다
-『난중일기』1596년 5월 6일
맑았다. 옥문을 나섰다. 남대문 밖 윤사행의 사내종의 집에 도착했더니 봉과 분,
울과 사행, 원경이 한자리에 같이 앉아 있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지사 윤자신이
와서 위로했다. 비변사 낭청 이순지가 와서 만났다. 한숨이 더욱더 깊어지는 것을
이길 수 없었다. 윤자신은 돌아갔는데, 저녁을 먹은 뒤에 술을 가지고 다시 왔다.
윤기헌도 왔다. 마음으로 권하며 위로했기에 사양할 수 없었다. 마지못해 술을 마셔
아주 많이 취했다....술에 취했다. 땀이 나 몸이 젖었다.
-『난중일기』1597년 4월 1일
이순신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가 있는 분입니다
- 명나라 장수 진린
이순신은 진실로 장수의 재질을 지녔으며,
재능은 수륙을 겸비하여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쉽게 얻지 못하거니와
변방의 백성들이 우러러보고 적들이 두렵게 여깁니다.
- 정탁,『신구이순신차초』
이순신은 충신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십여 명만 있다면 왜적에 대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 명나라 부총 이방춘,『선조실록』
지금 싸움이 급하구나, 부디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마라
- 이분,『이충무공행록』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이
모두 통곡하였으니, 마치 자기 부모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것 같았다.
이순신의 주검을 넣은 관이 지나는 곳곳의 백성들은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차렸고, 상여를 막으면서
“참으로 공께서 우리를 살렸는데 지금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라며 통곡하니, 길이 막혀서 상여가
나아가지 못하였다. 길가는 사람들도 모두 통곡하였다.
-류성룡,『징비록』
임금의 수레가 한성으로 돌아오고
백성들이 사는 자리에서 편안하여
우리나라 억만년 대계를 회복했으니
이 역시 충무공의 공이 아니겠는가
- 정조,『어제 이순신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