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소년중앙] 일상·환상 넘나들며 행복 좇는 77개의 시선 따라잡기

중앙일보

2026.02.08 14:0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책만큼 충실한 친구는 없다."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 말처럼 책은 우리 곁에서 지식과 지혜 그리고 위안을 줍니다. 문득 혼자라고 느껴질 때,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순간 책을 펴서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감정이 차분해지죠. 이처럼 책은 생각을 깊게 해주는가 하면 흔들릴 때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동반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특히 그림책은 이런 역할을 더 충실히 해내는 매체로 아동 전용이 아닌 청소년·어른·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즐기는 문화 장르로 자리 자리매김했죠. 그림과 글의 조화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그림책은 전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인 셈이에요. 해마다 열리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 모든 세대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테고요. 올해 제59회를 맞은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3월 28일까지 열려요.
언제나 급하게 달리느라 주변의 소중한 순간과 풍경을 놓치는 토끼가 주인공인 로렌조 산지오의 ‘서둘러, 서둘러’.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도서전인 '볼로냐 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1967년부터 시작됐어요. 이번 제59회 원화전에는 89개국에서 4374명이 응모해 역대 최다 참가를 기록했으며, 29개국 77명의 작가가 최종 선정됐죠. 치열한 공모 과정을 거친 만큼 어느 해보다도 문화적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해요. '제59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77가지 시선, 일상 속 행복을 물들이다’라는 주제 아래 '볼로냐를 사로잡다,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 14인전'을 비롯해 '일상 속 특별함' '환상 여행' '자연 이야기' '우리가 사는 세상' '감정의 조각' 총 6개 섹션으로 구성됐어요. 최신 일러스트 트렌드는 물론 세계 각지의 아티스트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로 다문화·환경·젠더 감수성 등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해 관람객 만족도도 높다고 합니다.

첫 번째 섹션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 14인전'은 서로 다른 개성과 감각을 지닌 14명의 일러스트레이터와 이들이 들려주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피노키오'를 탄생시킨 카를로 콜로디를 비롯해 브루노 무나리 등 아동 문학 거장을 배출한 이탈리아 출신 작가 14인이 '제59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 선정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먼저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상상력으로 일상의 판타지를 포착하는 작가로 유명한 알레시오 알치니가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아요. 그가 글을 쓰고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 '우주 토끼'는 평범한 주말 아침, 오렌지 주스를 찾아 우주선을 타고 집으로 날아온 작은 우주 토끼들과의 유쾌한 만남을 그린 작품이죠.
시드니 스미스는 ‘2025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도록을 그린 작가로 이 그림 속 두 아이는 본인의 아이들이다.
이탈리아 북부,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며 고양이, 자연, 그리고 정겨운 마을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다루는 로렌조 산지오의 '서둘러, 서둘러' 작품이 이어집니다. 이 작품은 언제나 급하게 달리느라 주변의 소중한 순간과 풍경을 놓치는 토끼가 주인공인데요. 작가는 서정적인 시골 풍경 속에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과 자신에게 영감을 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정서를 담아내며,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볼 것을 당부하죠.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림책 작가들은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해요. 작가들은 주변 환경과 사물, 매일 마주하는 작은 사건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이야기의 씨앗을 발견하죠. 이렇게 지극히 평범했던 것들이 스토리텔링을 이끄는 특별한 주제로 거듭나는 과정을 '일상 속 특별함' 섹션에서 엿볼 수 있어요. 이번 섹션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은 공원, 비 내리는 날, 일상의 물건들, 도시의 풍경, 친구들과의 휴가, 집고양이 등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죠. 일상 속에서 유쾌하고 재미있는 상황을 포착하는데 능숙한 일러스트레이터 파울리나 라우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이미지를 대비시켜 유머를 극대화했는데요. 그의 작품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큰 문제가 벌어질 것처럼 보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유머감각이 돋보여요.
평범한 주말 아침, 오렌지 주스를 찾아 우주선을 타고 온 작은 토끼들과의 만남을 그린 알레시오 알치니의 ‘우주 토끼’.
루이스 캐럴의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상상 속 환상세계는 언제나 작가들에게 매력적인 이야기 원천이자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됐습니다. 작가들의 뛰어난 상상력과 유머가 담긴 환상의 여정을 만끽할 수 있도록 꾸민 '환상 여행' 섹션에는 한국 작가 작품도 만나볼 수 있어요. 안경미 작가의 '가면의 밤'은 버섯이 핀 모습과 유사한 한국 전통 괴물 '가면소수'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고 해요. 여러 가면을 써보다가 진짜 얼굴을 잃고 혼란에 빠진 아이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철학적인 여정을 그렸죠. 한국의 전통적인 미장센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어린이 독서 축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죠. 또 다른 한국 작가 오다라의 '불량감자'는 어느 여름 마주한 울퉁불퉁하고 싹이 난 감자로부터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얘기는 못나 보이지만 여전히 존재 의미를 지닌, 불완전한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이라고 해요. 이 책을 다 읽고 "그래, 나도 바삭하고 맛있게 살아보자"는 용기를 얻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결말일 것이라고 작가는 강조했죠.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자연과 환경은 매우 중요한 소재입니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자연과학이 발달하며 일러스트레이션은 자연 현상과 동물을 묘사하면서 발전했어요. 19세기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아동 문학 작가들도 자연의 요소를 주제로 쓰고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실제로 베아트릭스 포터, 레오 리오니 등 수많은 세계적인 거장들이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을 많이 그렸고 이런 트렌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죠. '자연 이야기'는 자연의 경이와 아름다움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 작가들을 소개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보여주는 섹션이에요.
아나 G. 라르티테기의 ‘바보들의 배’는 바보들의 도시에서 벌어진 일련의 엉뚱한 사건을 풍자했다.
호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선보인 호주 출신 작가 마크 마틴은 해가 떠오르는 여명의 순간과 자연 속에서 깨어나는 생명체의 경이로운 활동을 조명하는 과정을 그림책에 담았는데, 그게 바로 전시작 '여명'입니다. 이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장엄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새로운 날의 희망을 심어주죠. 독일 드레스덴 출신 작가 니나피퍼의 '밤 산책'도 많은 관람객에게 주목받았어요. '밤 산책'은 글이 없는 그림책으로 밤 산책에 나선 한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헤드램프가 꺼져가자 그는 비로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숲속의 화려한 빛을 발견하게 되죠.

그림책은 종종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며 우리가 사는 시대의 현주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어린이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지만 어떤 작가들은 인간의 삶과 역사의 복잡하고 어두운 면을 다루는 것을 외면하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 섹션에서 선보이는 작가들은 연대의식·차별·아동 인권·장애·전쟁과 같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내요. 더불어 경쾌하고 재미있게 세상 사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도 함께 만나볼 수 있어요. 페루 작가 멜리사 시레스는 코로나19 시기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애완동물'은 당시 한 길고양이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회복했던 그녀의 개인적 치유의 경험에서 출발한 그림책이죠.
줄리아 파스토리노의 ‘내 개는 특별하니까!’ 한 장면.
인간과 고양이가 사람이라는 낯선 생물을 발견해 입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애정과 돌봄의 의미를 따뜻하게 전해요. 양효주 작가의 '야만인'은 진정한 자아를 깨달은 후에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서커스 호랑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을 건네죠.

그림은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정서적 경험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언어의 역할을 합니다. 특히 그림책은 어린이기 처음 만나는 문학이자 시각 예술로서 정서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죠. 이에 작가들은 두려움·외로움·불안·부끄러움과 같은 아이들이 가장 먼저 경험하는 원초적 감정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나아가 인간관계의 복잡함이나 죽음처럼 어른들도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주제를 탐구합니다. 마지막 섹션 '감정의 조각'은 여러 감정을 다양한 표현 방식과 시각적 은유를 활용해 표현했어요. 대만 타이베이에서 활동하는 장 샤오치 작가는 일상의 유머에서 얻은 영감을 기발하고 유희적인 화풍으로 풀어내며 아동을 위한 따뜻한 세계를 그립니다. 작가는 '세 개의 주황색 동그라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과 부담감을 주인공을 졸졸 따라다니는 주황색 동그라미로 시각화했죠. 아이의 솔직한 시선으로 그려낸 따뜻한 그림체는 불편한 감정을 억지로 숨기기보다 다정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벤자민 필립스의 ‘다리긴 남자’.
중국 작가 장쓰치의 '마사가 싫어'는 활기찬 색감과 유쾌한 서사를 통해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데요. 이 작품은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두 동물 친구의 오해와 화해를 다룬 이야기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을 재치 있게 그려냈습니다. 이처럼 다채로운 원화로 각국의 문화와 독특한 세계상을 만날 수 있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새로운 작가 발굴은 물론 기존 작가들의 전문적인 성장을 돕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림책 예술의 깊이와 따뜻한 감동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제59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기간: 3월 28일(토)까지
장소: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월요일 휴관, 입장은 오후 6시 20분 마감)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청소년·어린이 1만원




이보라([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