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광장'(지난달 15일 개봉)은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의 1등 서기관 보리와 교통보안원 복주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감시의 시선 때문에 둘은 한밤 중에 접선하듯 만나며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연애를 이어간다. 이들을 감시하는 통역관 명준에게 보리의 사랑은 상대방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비칠 뿐이다.
평양 근무 연장 신청이 거부되고, 갑자기 복주마저 사라지자 보리는 절망에 빠진다. '마지막으로 복주를 만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보리의 간절한 요청에 명준은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한다.
영화는 지난해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상, 아시아태평양 스크린어워즈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다음 달 열리는 도쿄애니메이션 어워즈페스티벌 장편경쟁 부문에도 진출했다.
감시 체제 속 개인들의 외로운 내면에 집중한 영화는 김보솔(38) 감독의 KAFA(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이다. 1억원의 예산으로 6년 간 공을 들였다.
4일 전화로 만난 김 감독은 "적은 예산으로 북한을 표현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택했다"며 "영화제 수상 등 반응이 좋아 실사영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Q :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10년 전 평양에서 3년간 근무하고 남한에 온 스웨덴 외교관 인터뷰를 봤는데, 차량이 없는 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며 외로움을 달랬다는 말에서 선명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Q : 영화 곳곳에 남북 관계에 대한 은유가 녹아 있다.
"남북 관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보리와 명준은 각각 남한과 북한을, 복주는 통일을 의미하는 캐릭터다. 미음자 구조의 관사에서 보리와 명준이 창을 통해 마주 보는 건 남북 대치 상황을 빗댄 것이다. 한국인 할머니를 둔 보리가 나중에 머리를 검게 염색하는 것 또한 상징적인 행위다."
Q :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과의 연결 고리는 뭔가.
"소설의 주인공 명준이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주인공 이름도 그대로 가져왔다. 소설의 명준처럼 영화 속 명준도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길로 나아간다."
Q : 명준도 보리 못지않게 외로운 인물이다.
"자문을 해준 탈북자 분께 '북한에서 외로웠던 적은 없었나'라고 물었더니, '매일이 불안했기에 외로울 새가 없었다'고 하더라. 강렬한 답변이었다. 명준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Q : 명준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보리의 외로움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반면 명준은 불안의 장막 때문에 외로움이 어떤 감정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얼어붙어 있던 그의 마음에 생긴 균열은 자유이자 희망이다. '외로워서 그런가 봅니다'라는 그의 대사는 '자유를 느꼈습니다'와 같은 의미다. 명준의 변화가 작품 주제와 닿아 있다."
Q : 명준이 눈 내리는 광장에서 자전거 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보리가 영화의 문을 열지만 끝내는 건 명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준이 영화 초반의 보리처럼 자전거를 타는 건, 보리의 외로움이 명준에게 전이됐다는 의미다. 보리가 고독에 저항하기 위해 페달을 밟았다면, 명준은 해방감과 자유에서 오는 에너지로 자전거를 탄다."
Q : 보리가 복주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뭔가.
"통일은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다. 그렇기에 복주(통일)에 대한 보리(남한)의 사랑에 이유나 개연성이 필요하지 않았다. 북한 체제 내에서 개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Q : 논의 중인 실사영화 제작에도 참여하나.
"영화 관계자들이 스웨덴과 협력해 실사 영화로 만드는 걸 추진하고 있다. 다음 작품 때문에 연출은 맡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시나리오 초고, 스토리보드까지는 참여할 의사가 있다. 차기작은 사회적 참사에 대한 폭력적 시선을 고발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