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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동안 2번 헬기 실려간 린지 본의 두려움 없는 미래

중앙일보

2026.02.08 22:17 2026.02.0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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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자 스키 스타 린지 본. 사진은 2009년 모습. AFP=연합뉴스
‘스키 여제’ 린지 본(42·미국)은 열흘 동안 두 차례나 헬리콥터에 실려 스키장을 떠났다. 동계올림픽 전초전 격이었던 지난달 30일(이하 한국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본은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8일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여자 활강 결승에서 또다시 중심을 잃고 쓰러져 헬기로 이송됐다. 이번엔 왼쪽 다리 골절상을 당했다.

왼쪽 무릎 파열 부상을 당하고 골절상을 당하기 전까지, 약 8~9일 동안 본은 '원더우먼' 같았다. 2년 전 티타늄 인공관절로 갈아 끼운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을 당한 왼쪽 무릎을 가진 40대 노장이 올림픽 본선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인간 승리였다. 시속 130㎞를 넘나드는 고속으로 깎아지른 슬로프를 타는 활강은 알파인 스키에서도 가장 위험한 종목이다. 본은 두 차례 연습 활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까지 부풀렸다. 그러나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거침없는 도전에 나선 본은 출발한 지 13초 만에 기문에 부딪히며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슬로프에 처박히는 순간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들것에 실려 헬기로 이송된 린지 본. 8일 부상을 당한 이후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본은 코르티나 지역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1차 치료를 받고 대형병원으로 재차 이송돼 부러진 다리를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미국스키협회는 “본의 상태는 안정적이며 미국과 이탈리아 의료진이 집중 치료를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애초 본은 이번 올림픽에서 화룡점정을 찍고, 올 시즌을 끝으로 스키인생의 대미를 장식할 작정이었다. 골절상 회복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본이 목발의 도움 없이 걸을 땐 이미 스키 시즌이 끝난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나오진 않았지만, 그의 스키 선수 인생은 헬기에 실려 슬로프를 떠나는 모습이 마지막 장면이 될 가능성이 크다. ESPN 등에서는 “그의 복귀가 올림픽 흥행에 큰 도움이 됐지만, 영구 장애로 연결된다면 올림픽 정신에 대한 논란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료진을 경고를 건너 뛴 스포츠 정신”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향한 용감한 도전은 금메달을 딴 것보다 더 감동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헬기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실패가 아니라 본의 도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X 등 SNS에는 "본의 도전 덕분에 나도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그녀는 지지 않았다"는 반응과 함께 #GoLindsey, #Vonn과 같은 응원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있다.

린지 본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연속 장면. AP=연합뉴스
강하게 슬로프에 충돌한 린지 본은 수차례 데굴데굴 구른 후 눈밭에 멈출 수 있었다. AP=연합뉴스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스포츠 지도자나 행정가 등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다. 미국 체육계뿐만 아니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본의 경험과 영향력은 큰 자산이다. 커스티 코번트리 IOC 위원장은 “린지 본은 언제나 올림픽 챔피언이자 영감의 상징”이라며 쾌유를 기원했다.

도전의 아이콘이라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광고 모델로 한층 더 각광받을 수도 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본은 이미 롤렉스, 구찌, 언더아머, 헤드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한 경험이 있는 '패션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패션계의 아카데미로 통하는 맷갈라에도 수차례 초청돼 멋진 드레스 자태를 뽐내기도 했다.

본은 2010년 밴쿠버에서 금1, 동1개를 딴 뒤 무릎 부상으로 8년을 건너뛰고 지난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동메달 1개를 추가했다. 2019년 은퇴할 땐 “내 몸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면서도 “부상은 내 이야기의 일부였지만, 그것이 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투지가 있었기에 7년 뒤 열린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섰다.

끔찍한 부상을 당하기 닷새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본은 “나는 아직 여기 있다. 여전히 싸울 수 있고,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능력이 닿는 한 계속 도전할 것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후회하고 싶지 않다. 출발선에 서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본은 기자회견에서 한 자신의 발언을 헬기에 실려 나갈 정도로 용감하고, 무모하게 모두 실천했다.
40대지만 누구보다 청춘, 린지 본은 앞으로도 또다시 두려움 없이 새로운 출발선에 설 것이다.



이해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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