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빗썸 오지급 사고를 계기로 “가상자산 정보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점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며 2단계 가상자산 입법 과정에서 규제·감독체계를 대폭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빗썸 현장점검에서 위법 소지가 확인되면 즉시 현장검사로 전환해 엄중 조치하는 한편, 다른 거래소까지 고객자산 관리와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을 점검해 재발을 막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9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2026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빗썸 사태는 가상자산 정보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케이스”라며 “정말 심각하게 보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법(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으로도 저촉되는 부분이 있는지 판단할 부분이 있다”며 현행 제도의 틀 안에서 책임을 묻고 시정할 부분을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금감원은 현재 빗썸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진행 중이다. 이 원장은 “빗썸의 고객자산 관리·보호 실태와 사고 방지를 위한 전산화 시스템, 내부통제 설계·운영의 적정성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며 “현장점검 중 일부라도 법 위반 소지가 발견될 경우 즉시 현장검사로 전환할 예정이고, 검사 결과 위법 사항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에 따라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했다. 금감원은 빗썸에 그치지 않고 거래소 전반으로 점검을 확대한다. 이 원장은 “유사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거래소에 대해서도 고객자산 보유·운용 현황, 내부통제 시스템 등을 점검할 예정”이고 했다.
이 원장은 특히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을 할 때 규제 사각지대, 무엇보다 가상자산정보시스템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가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부분을 차단하지 못하면 구조적 위험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2단계 법안의 규제·감독체계 보완을 지원하고 제도의 효과적 시행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이 원장은 또 “‘유령코인’이 (제도권으로) 레거시화 될 수 있겠느냐”며 “주요 고위험 분야에 대해서는 기획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또 이 원장은“미회수 인출자들을 법률가의 관점에서 보면 재앙”이라며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오지급된 비트코인을 인출한 이용자에 대해 “점유이탈물 횡령에 해당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부당이득 반환에 해당하는지는 너무나 명확하다”며 “원칙적으로는 비트코인 원물반환이 맞고, 빗썸에 확인까지 받은 경우라면 원물반환이 아니더라도 부당이득은 반환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금감원 특별사법경찰(특사경) 권한 확대 방안도 발표됐다. 이 원장은 “금융위와 긴밀히 협의해 금감원 자본시장 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 그리고 민생특사경을 새로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다만 “인지수사를 하게 되면 특사경 수사권한이 과도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 만큼, 증선위 내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를 거쳐 수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사기·보이스피싱 등 민생범죄가 수사 범위에서 빠진 이유에 대해선 “첫 술에 배부르는 일이 무엇이 있겠냐”며 “금감원에 대한 국민 신뢰가 쌓이고, 금감원이 가장 강력하고 현장성 있게 수사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면 입법적 환경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심위 통제가 과도해 신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는 “수심위가 48시간 안에 결정짓기로 했다”며 수사 지연을 막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에는 반대하지만 국가기관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원장은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은 레벨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며 “SEC나 금융청은 별정직으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국가기관”이라고 했다. 이어 “금감원은 IMF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국가기관으로 출범하지 못하고 무자본특수법인으로 만든 것”이라며 “국가기관으로 하는 것이 불필요한 이슈를 정리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권 현안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은행 지배구조 선진화와 관련해선 “지배구조 특별점검 결과는 충실한 개선방안 도출을 위해 TF에 반영하고, 주요 미흡 사례를 은행권에 공유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홍콩 H지수 ELS 과징금과 관련해선 “소비자 피해 규모가 크고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불완전판매가 문제된 대표 사례로 중요성이 매우 큰 사안”이라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과징금 부과를 위해 세부 기준을 마련해 적용했고, 제재심에서는 자율 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 제재 수준은 금융위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개인 자산 공개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아파트를 매도한 뒤 가입한 ETF는 코스피 4000선에서 공방 벌일 때 들어갔는데 수익률이 좋더라”고 말하며 향후 주기적으로 ETF에 가입해 시장에 시그널을 주겠다는 의지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