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1955년 창당 이래 최대인 316석을 획득해 단독으로 3분의 2석(310석)을 넘어섰다. 중의원에선 자민당 단독으로도 개헌 발의가 가능해진 셈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후계자를 자임하는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가 남긴 숙제인 개헌을 목표로 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헌법 개정을 포함해 공약에 내건 정책 과제 실현을 위해 힘차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헌법 개정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저도 꾸준히 노력해 나갈 각오다.” 다카이치 총리는 9일 기자회견에서 개헌과 관련해 이같이 말해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을 밝혔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자위대 명기’ 등 헌법 개정을 위해 국민에게 정중한 설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겠다”고 공약했다.
자민당은 창당 이래 개헌을 숙원으로 내걸어 왔다. 특히 아베 전 총리는 개헌 의지가 매우 강했다.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이었던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8일 여당으로 3분의 2석 확보가 확실시되자 “3분의 2석이 있으면 헌법 개정 발의가 가능하다. 확실한 결과를 내지 않으면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게 된다”고 말했다. 자민당 내에선 개헌을 위한 검토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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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신중...34%만 "개헌 필요하다"
일본 개헌 논의의 중심에는 평화헌법의 상징인 9조가 있다. 일본 헌법은 9조 1, 2항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전쟁·무력 행사를 ‘영구적으로 포기’하고, 이를 위한 전력(戦力)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법 규정과는 달리 자위대가 실제 군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존재 근거를 명확히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실현에는 장벽이 많다. 우선 개헌을 위해서는 참의원에서도 3분의 2석 이상의 발의가 필요하다. 현재 참의원에선 자민당과 연립을 구성한 일본유신회를 합쳐도 의석이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개헌에 적극적인 보수정당인 국민민주당이나 참정당 등도 있지만, 와타나베 쓰네오(渡部恒雄) 사사카와 평화재단 수석 펠로우는 “개정안은 각 당마다 차이가 있어 참의원에서 3분의 2를 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예상했다.
자민당 내에서도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어떻게 명기할 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2017년 당시 아베 총리는 9조 2항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유지한 채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당내 보수파 사이에선 2항을 아예 삭제하고 자위대를 군대로 명확히 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중의원, 참의원 모두에서 3분의 2 동의를 얻어 개헌안이 발의되더라도 국민투표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9조 개정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신중하다. 지난해 5월 NHK 여론조사에 따르면 9조 개정에 대해 “필요하다”는 응답은 34%에 그쳤고, “필요하지 않다”는 28%,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33%였다.
현재 국민의 관심도 높지 않다. 8일 NHK 출구조사에 따르면 투표 시 가장 중시한 정책은 ‘물가 상승 대책·경제 정책’이 49%로 압도적인 1위였다. ‘헌법 개정’은 불과 3%였다.
아베 전 총리 역시 측근이던 야치 쇼타로(谷内正太郎) 전 국가안전보장국장의 조언에 따라 개헌은 나중에 도전할 ‘대목표’로 설정하고, 정권 초기엔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 추진에 매진했다. 국민의 기대를 받고 있는 다카이치 총리 역시 경제 정책에서 국민들이 실감할 수 있는 성과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헌에 힘을 쓸 여유가 없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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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다카이치 밀월’로 대중 관계도 풀리나
한편 역사적인 대승이 외교적으로는 정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수적이고 강한 리더를 선호하기 때문에, 다카이치 총리와 더욱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와타나베 수석 펠로우는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을 제치고 직접 거래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다카이치 총리가 세계의 ‘피스메이커’를 자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중관계 개선의 중재자 역할을 맡아주는 기회를 만들면서, 일·미 관계 강화와 대중 관계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으로 벌어진 중·일 갈등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거리를 둬 왔지만, 이번 선거 대승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일본의 ‘우군’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선 중국에 굴하지 않는 다카이치 총리의 외교 정책도 대승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이 있다. 따라서 다카이치 총리는 앞으로도 중국의 요구대로 발언을 철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제계 등에선 일본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일정 정도의 관계 개선 필요성은 높아지는 상황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오는 3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외교가에선 이번 만남에서 정상 간 밀월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는 동시에, 4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시 ‘평화 외교’ 역할을 그가 맡을 수 있도록 하게된다면 중·일 관계도 조금씩 풀려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