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대왕은 대단한 효자였는데, 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오는 과정을 여덟폭의 그림으로 담은 겁니다.”
9일 오후 4시쯤 일본 도쿄 우에노에 있는 도쿄국립박물관. ‘한국 미술의 보물상자(玉手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전’ 개막을 하루 앞두고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정조의 수원 화성 방문 행렬을 기록한 ‘화성원행도’에 대한 해설이 시작되자 참석자들 눈길이 일제히 유 관장으로 쏠렸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왕복하는 행사가 일주일이 걸립니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이 한강을 건너가는 것인데요. 당시 다리가 없어서 이렇게 서해안 고깃배를 엮어서 다리를 놨습니다. 임금의 가마가 지나가고 있는데, 주변에 구경꾼들이 나와있는 모습들도 다 묘사돼있고요.”
이날 유 관장의 ‘깜짝 해설’을 곁들인 사전 공개 행사에 참석한 양국 취재진은 약 30여명. ‘화성연행도’에 이어 관심을 끈 것은 ‘오백나한도(보물 1883호)’였다. 고려 고종 22년(1235년) 김의인이 발원해 제작된 것으로, 당시 몽골의 침입 속 국난 극복의 염원을 담아 부처의 가르침에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인 나한 500명을 한폭 한폭에 담은 것이 특징이다. 나한의 인간미를 수묵으로 담백하게 표현했는데, 특히 이번 전시회에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제92 수대장존자와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제23 천성존자가 나란히 전시됐다.
이번 특별전은 지난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일본 미술 특별전'에 대한 화답으로, 오는 4월 5일까지 총 2개의 전시실에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나눠 한국 전통 미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되는 작품은 총 17점으로 이 가운데 15점이 일본 내 첫 공개다.
고려 불교 미술과 고려 청자가 전시된 제1 회장에선 왼발을 늘어뜨리고 오른쪽 무릎을 세워 앉은 고려 관음보살 좌상(고려 13세기)이 관객을 맞이한다. 도쿄국립박물관 관계자는 “최근 조사에서 소나무와 전나무로 제작된 것이 확인된 이 불상에서는 다수의 봉안물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례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제2 회장에서는 조선왕조의 궁중 문화가 화성원행도와 함께 소개됐다. 흥선대원군 기린 흉배를 비롯해 관복과 사모, 활옷도 전시됐다. 도쿄국립박물관은 “복식은 신분 질서와 의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비됐는데, 왕실 회화에는 왕권의 위엄과 질서미가 표현됐다”면서 “이러한 미의식은 오늘날 한국미술로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밖에도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숙종(1674~1720)이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증손자이자 에도막부 8대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 吉宗·1684~1751)에게 보낸 국서도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일반에 공개됐다. 요시무네의 즉위 축하를 담은 외교문서로 당시 조선통신사를 통해 전달된 것이다. 도쿄국립박물관 측은 “축하 인사와 조선 특산품이 나열된 증정품목이 별도 폭으로 구성돼 있다”며 “두껍지만 부드럽고 광택이 나는 최상급 종이에 아름다운 서체로 적힌 국서는 조선 왕조 외교 문화의 정수를 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후지와라 마코토(藤原誠) 도쿄국립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K팝, 드라마, 한국 요리 등 현대 일본을 매료시키는 한국 문화와 그 뒤에 펼쳐진 풍부한 역사·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