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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울 노란집’ 통째로, 박완서 아카이브 생겼다

중앙일보

2026.02.0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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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서재가 서울대 중앙도서관 내부로 옮겨졌다. 전시된 서재에는 작가가 삶의 마지막 10여 년간 쓰던 책상과 책장이 놓였다. 우상조 기자
“작은 둥지 같았던 어머니의 서재가 젊은 세대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발견하는 공간이 되기를 빕니다.”

9일 오후 서울 신림동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정관에서 열린 ‘박완서 아카이브’ 개관식에서 박완서(1931~2011) 작가의 딸 호원숙(72)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는 중앙도서관 본관과 관정관을 연결하는 공간에 총 4950㎡(약 1500평) 규모의 ‘서울대 헤리티지 라이브러리’와 ‘대신파이낸셜그룹-서울대 헤리티지 라운지’(이하 ‘라이브러리’와 ‘라운지’)를 조성하고 이날 문을 열었다. ‘박완서 아카이브’는 ‘라이브러리’ 내에 165㎡(약 50평) 규모로 마련됐다. ‘라이브러리’의 다른 공간엔 ‘보이는 수장고’가 놓였고, ‘라운지’에는 학생들의 공부 공간이 조성됐다.

이날 ‘박완서 아카이브’ 개관식에서 축사를 한 딸 호원숙씨는 “가슴이 벅차다”며 서울대와의 인연을 밝혔다. 우상조 기자
이날 개관식에서 축사를 한 호씨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15년이 지났지만, 2006년 서울대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던 날 진정한 기쁨으로 경쾌하면서도 편안한 발걸음을 하시던 동선이 눈에 선하다”며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시고 영광스러워하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완서 아카이브’에는 딸 호씨를 포함한 유가족들이 기증한 박완서 작가의 유품 6000여 점 중 470여 점이 전시됐다. 재봉틀·사진기 등 생활용품부터 친필 원고·일기·편지 등 육필 자료까지 다양하다. 박완서 작가의 소장 도서도 방문한 학생과 일반인이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박완서 아카이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가의 서재를 재현한 공간이다. 작가가 1998년부터 생을 마감한 2011년까지 지냈던 경기 구리시 ‘아치울 노란집’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왔다. 박완서는 이곳에서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2000), 『그 남자네 집』(2004)과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2007) 등을 집필했다. 재현한 서재에 놓인 책상은 바닥과 밥상에 놓고 글을 쓰던 소설가 박완서가 처음으로 가진 책상이다. 또한 생전 박완서가 아꼈던 살구나무 등이 심어진 정원도 실제 나무와 흙을 가져와 재현했다.

박완서
박완서는 1950년 5월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같은 해 6월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입학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대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박완서는 1970년 등단 이후 소설가로 활동하며 모교와의 인연을 이어왔다. 1977년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에 기고했으며, 2006년엔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의 지난 10년 간 도서 대출 통계에 따르면, 그는 서울대 출신 작가 중 가장 많은 학생들에게 읽힌 작가이기도 하다.

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도서관은 열람실 위주의 공간을 넘어, 아카이브 공간이자 박물관 등 캠퍼스 내 다양한 교육 연구활동으로 새로 기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러한 기획의 취지에 공감해주신 대신파이낸셜그룹이 30억원을 기부해주셨고, 박완서 작가의 유가족께선 유품 일체를 서울대에 기증해주셨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박완서 아카이브’ 개관 기념전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이름으로 9일부터 4월 30일까지 열린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서울대 학생·교직원이 아니어도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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