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이우영의 과학 산책] 25달러 문제

중앙일보

2026.02.09 07:02 2026.02.09 12:3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허름한 외투를 걸치고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노신사가 학술회의장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마침 휴식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은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봤다. 이번엔 또 무슨 문제를 낼까? 그는 회의장 한쪽 칠판으로 다가가 구석에 수학 문제를 하나 적었다. 그리고 그 옆에 상금 25달러라고 썼다. 참석자들은 부지런히 문제를 옮겨 적었다. 상금은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더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상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문제를 풀면 그 자체로 큰 영예를 얻었다. 이 노신사는 바로 부다페스트 출신의 괴짜 수학자로 수학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폴 에르되시(1913~1996·사진)였다.

그는 수다쟁이 천재였으나 너무 순진하고 일상 행동은 극도로 서툴렀다. 1950년대 초 미국이 공산주의자 색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미국 입국심사에서 심사관이 그에게 마르크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훌륭한 사람이죠”라고 대답해 입국이 거부되기도 했다. 또 맨해튼 프로젝트(미국이 주도한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 참여 면접 심사에서는 너무 수다스러워 기밀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떨어지고 말았다. 그에겐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그는 오직 좋은 수학 문제를 찾고 문제를 함께 나누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에르되시는 한곳에 머무르기를 싫어했고 평생 방랑 수학자로 집도 가족도 없이 전 세계 22개국 이상을 떠돌며 살았다. 그는 83세에 바르샤바에서 열린 학술회의 참석 중 숨을 거두었는데.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깊은 여운을 준다. “이제 더는 멍청해지지 않겠구나.” 그는 주옥같은 수학적 업적들을 남겼지만 아마도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어려운 수학 문제에 유희를 담아 사람들을 고무시킨 것이리라. 실로 타인의 삶을 고무시키는 일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의 표상이 아니겠는가.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