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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장으로 읽는 책] 뒷모습을 가졌다는 것

중앙일보

2026.02.0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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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다른 사람이 찍은 내 뒷모습 사진을 받아들 때가 있다. 내 뒷모습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먼 타인처럼 내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또하나의 얼굴이 거기에 있다. (…) 타인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등을 가졌다는 것. 자신이 알지 못하고 어찌할 수도 없는 신체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 왠지 두렵고도 안심이 된다.

-나희덕 『마음의 장소』 중.

김지윤 기자
나희덕 작가의 에세이집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이 떠올랐다. 타이베이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통해 삶과 영화의 본질을 묻는 영화다. 2000년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최근 4K 리마스터 버전이 국내 재개봉했다.

감독의 분신 같은 여덟 살 소년 양양은 아버지의 낡은 카메라로 주변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영화의 엔딩,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이제 다 안 것 같아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이에요. 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들이 못 보는 뒷모습을요. 그러면 다들 알게 되겠죠.”

삶의 진실은 삶의 이면에 있고, 그렇게 쉬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여주는 게 영화와 예술의 역할이라는 얘기다. 영화에는 “삼촌이 그러는데, 영화가 발명된 이후로 인류의 수명이 최소한 세 배는 늘어났대”라는 대사도 나온다. 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본다는 의미다.

하루에 수십 번 거울과 창에 비친 앞모습을 보고 치장하지만, 뒷모습은 볼 수 없고 치장도 불가다. 무방비다. 나희덕 작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뒷모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동시에 아주 많은 것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 넘치는 거짓과 위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나마 정직하고 겸손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한 등을 가졌기 때문이다. 뒷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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