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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실리 챙기는 미국의 역할 공백, 강소국 외교로 버텨야

중앙일보

2026.02.0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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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주의 안보·국방전략과 우리의 대응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달 23일 미국의 ‘2026 국방전략(2026 National Defense Strategy)’이 발표되었다. 지난해 12월 4일 발표된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군사전략을 구체화한 후속 문서다. 2026 국방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25년 국가안보전략의 기본 틀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우선 먼로주의로의 회귀가 강조되었다.

서반구 안보 집중 ‘재균형’ 정책…유럽 지역 중요성, 아시아에 밀려
중국은 우아한 평화 상대, 북 핵 위협 인정하면서도 비핵화 명시 없어
“한국에는 더 제한된 군사 지원” 표현, 90년대 미군 재배치 연상케 해
주한미군 변화, 전작권 전환 등 아직 불투명,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2025년 안보전략과 먼로주의 회귀
먼로주의에 대한 언급은 트럼프 행정부가 바라보는 세계관의 일단을 보여준다. 1945년 이후 전 세계 시장경제를 움직이기 위해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국제연합 등을 조직했던 미국의 역할보다는 다른 대륙에서의 전쟁 개입을 꺼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안보에만 개입했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급박한 위협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패권이 중요하지 않다면, 강대국 간의 경쟁에 비용을 쓸 필요가 없다. 대신 재균형(rebalanc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는 대공황 극복을 위해 유럽 열강, 그리고 아시아에서 일본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미국 내 경제 재건에 집중했던 1930년대 미국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오키나와에서 대만과 필리핀, 그리고 말라카 해협으로 이어지는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을 설정했다. 이 부분은 마치 1950년 미국이 방어선(defense perimeter)으로 설정했던 애치슨 라인을 상기하게 한다. 물론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되었던 대만이 핵심으로 부각된 것이 큰 차이이다.

경제안보 강조
2025년 국가안보전략의 또다른 특징은 경제안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닉슨이나 레이건 행정부에서 발생했던 통상 갈등이 재현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1980년대 통상법 301조나 슈퍼301조가 상대국에 대한 조사와 제재에 중점이 두어졌다면, 트럼프 정부의 경제안보는 관세 인상을 통한 ‘균형 잡힌 무역관계’로 설명된다.

이는 수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 적은 현재 미국의 경제 실정을 잘 보여준다. 수출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국·일본·영국과 ‘기술번영 양해각서’을 체결했으며, 다양한 동맹국으로부터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와 투자이익을 미국이 환수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아울러 다자개발은행(multilateral development banks)의 활용을 제안한 것도 주목된다.

이러한 목표 아래 유럽·한국 등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과 투자를 강조했는데, 과거와 달리 지역적 중요성에서 북미와 중남미를 5위에서 1순위로 격상하고 인도 태평양 지역이 2순위, 제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2순위였던 유럽이 3위로 밀려났다. 여기에 더해 유럽을 경제적 후퇴와 문명소멸(civilizational erasure)의 현상이 나타나는 곳으로 표현했다.

3순위로 떨어진 유럽
이러한 국가안보전략은 미국 탄생 이후 처음 나타나는 대외정책 기조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외교의 중심은 강대국 중심이었고, 항상 유럽이 제1의 외교 대상이었다. 이민자들의 고향이며, 경쟁자일 뿐만 아니라 가치관을 같이 하는 유럽 제국은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그리고 냉전 시기 미국 외교는 가장 중요한 외교적 고려 대상이었다. 미국이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과정 역시 유럽에서의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시아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즉 냉전 시기 열전이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지만, 트럼프 시대에는 이해관계의 중심 무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며 가장 다이나믹한 인도에서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국가안보전략을 반영한 2026 국방전략은 글로벌한 활동이 더 이상 미국의 의무도, 이익도 아니라고 전제하고 있다. ‘거대한 체스판’에서 후퇴했던 브레진스키의 향기가 난다. 적대국과의 관계에서도 강한 대응보다는 힘에 의한 억지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트럼프 1기와도 다르다. 아울러 미국 자체의 방위산업 기반을 대대적으로 강화할 것을 선언했다.

NSC 68의 재현인가?
이는 1950년 국가안보회의 68호 문서(NSC 68)의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소련의 핵무기 개발과 중국 혁명에 당황했던 미국은 NSC 68 문서에서 재래식 무기의 증강을 통해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서는 불황 극복을 위해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경제 호황을 누렸던 양차대전의 시기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이라고 한다면 NSC 68은 미국 자체의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고, 2026 국방전략은 동맹국의 투자를 통한 군수산업의 굴기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상호혜택적 동맹(mutually beneficial alliance)으로 규정했다. 이를 통해 모든 동맹국이 모범적 동맹(model alliance)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상대방 평가에서 중국은 우아한 평화(decent peace)가 가능한 상대, 러시아는 관리 가능한 위협으로 평가했다. 러시아는 유럽에 위협이 되지만, 미국에는 직접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냉전 초기와 유사하게 러시아 자체의 약점에 주목했다. 당시에는 전체주의의 약점을 지적했다면, 2026년 국방전략에서는 인구와 경제적 측면의 약점을 부각했다.

반면 이란과 북한은 미국에 대한 직간접적 위협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북한은 ‘미국 본토를 핵으로 공격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고,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한국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규정했다.

더 제한된 지원과 주한미군
물론 한국에 대한 언급은 유럽보다 더 톤이 강했다. 유럽에 대해서 제한된(limited) 지원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더 제한된(more limited)’이란 표현을 썼다. 일본이나 호주는 거의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집단 방위(collective defense)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 냉전시대 실패했던 동북아에서의 집단방위 개념이 다시 나타났다.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 조정도 언급됐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주한미군의 성격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직후 아버지 부시 행정부가 시작한 ‘해외주둔미군 재배치 계획(GPR)’과 그 과정에서 한국군의 평시작전권 이양이 결정되었던 1990년대 초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2026 국방전략은 또한 탈냉전 이후 대응에 실패한 이전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 1990년대 초의 GPR은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로의 정권교체, 북핵 위기의 대두, 그리고 9·11 테러로 인해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늪에 빠져 더 많은 군사비를 써야 했다. 트럼프는 바이든을 비난하고 있지만, 실상은 선배 공화당 정부들의 실정이 더 큰 문제였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역사적이라고 했지만
최근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및 국방전략 문서에서 굳이 과거 미국의 정책을 비교한 것은 이들 문건이 스스로 역사적 접근(historic approach)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단절하면서 새로운 미국을 만들기 위한 기념비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유독 과거 정권들의 오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지도력과 대외정책은 모두 낭비에 불과했다’ ‘먼로 독트린의 지혜를 잃어버렸다.’ 이로 인해 트럼프가 취임했을 당시 미국은 세 번째 세계전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역사에 대한 비판 위에서 문건들이 만들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외교적 변화를 담고 있다면 케넌·니츠·로스토우·브레진스키의 비전이 보여야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유일한 특징은 ‘유연성’과 ‘중남미에 대한 강조’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개입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란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1970년대 말 이란에서의 피의 경험이 ‘국방전략’에 언급되어 있다.

유연성이라는 철학
이러한 안보·국방전략에 대해 유럽연합의 평가는 거의 절망적 수준이다. 공식적 논평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전략은 1945년 이후 미국의 역대 행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해 온 세계적 패권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철학으로부터 벗어난다고 평가했다. 또한 국제주의뿐만 아니라 다양성·형평성 및 포용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이 한국에는 어떻게 작동할까?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와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문제의 변화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1기가 북미정상회담으로 정신없이 지나갔다면, 2기의 앞날을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미지상군 철수나 재배치를 주장했던 닉슨·카터·부시 대통령의 정책은 모두 실패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가운데 관세 문제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다. 전략 문서를 보면 과거 80년간 한미관계의 복잡했던 과정이 향후 3년간 재현될 가능성도 부인할 수도 없다.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소국으로서의 한국 외교에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응급 대응에 정신없는 외교 최전선에 서 있는 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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