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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의 한반도평화워치] 현 정부 평화공존정책, 북의 ‘적대적 두 국가론’ 대책 고민을

중앙일보

2026.02.0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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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최근 통일부가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남북 평화공존 제도화와 공동성장 기반 구축,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위해 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를 포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는 역대 진보정부가 추진했던 대북정책의 내용과 궤를 같이한다. 평화공존 정책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정책에 대응하는 이재명 정부의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비핵화 등 공존 정책 공개
북한은 적대적 대남 관계 고수
미온적인 미·중 협력 이끌어낼
한반도 평화특사 고려해 볼 만

우리 정부의 ‘두 국가’ 해법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정치 실체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남북 연합 단계를 거쳐 정치통합과 민족 통일을 실현하는 통일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 공존론’은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 사이에서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평화적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옛 소련의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이 주장한 이론이지만 미국이 소련·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평화 공존론(데탕트)을 활용했다. 미·소, 미·중이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평화공존에 합의하면서 두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상과 이론 조정(신사고·사상해방)을 하고 개혁·개방에 나서기도 했다. 남북의 갈등과 북·미 사이의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한반도에서 평화공존 프로세스가 작동한다면 북한도 사상·이론적 조정을 통해 정책 전환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의 ‘평화’, 보수의 ‘통일’
대한민국의 통일 방안은 노태우 정부가 만들고 김영삼 정부가 수정·보완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민족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민족공동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과 행동 방침은 차이가 있다. 역대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포용(김대중)-평화번영(노무현)-상생공영(이명박)-신뢰(박근혜)-평화(문재인)-통일(윤석열)-평화공존(이재명)으로 이어졌다. 대북 인식론에는 차이가 있지만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통합과 통일을 실현한다는 전략적 함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은 근본적 차이를 보였다. 접촉·제공(지원)·대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포용 정책과, 제재와 압박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 추동과 급변사태를 유도하는 강압 정책이 대립했다. 무엇보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 추진은 대북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어렵게 하고,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는 결정적 걸림돌이었다.

진보정부는 평화를 내세우고, 보수정부는 통일을 앞세우는 경향을 보였다. 진보정부는 ‘평화경제론’을 내세우고 남북교류협력을 증진해 신뢰를 쌓고, 나아가 정치 통합을 모색하는 기능주의 접근을 시도했다. 이에 비해 보수 정부는 핵 개발을 추진하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이나 대북 지원을 ‘퍼주기’로 규정하고,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실현하고 급변 사태를 유도하고자 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상생과 공영’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급변사태에 기대를 걸고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라며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함께 ‘전략적 인내’로 일관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를 강조하며 ‘자유의 북진통일’을 공식화했다. 윤석열 정부가 두 국가 해법을 부정하면서 내세운 ‘김정은 정권 소멸론’에 맞서 북한이 ‘대한민국 괴멸론’을 주장하며 핵 공격을 위협하는 등 극단의 대치 상황으로 치달았다.

남북의 두 국가론
북한은 2023년 말 지난 80년의 남북 관계사를 결산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 정부든, 보수 정부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흡수 통일을 추진했다며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 나왔다. 북한은 우리 헌법의 영토 조항(3조)을 문제 삼으며 역대 정부 모두가 정권 붕괴와 체제 통일을 추진했다고 주장하고 남북관계를 단절했다. 북한의 입장 선회가 없는 한 이제 대북정책 추진과 관련한 남남갈등이 재현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대신 ‘평화적 두 국가’ 해법을 둘러싸고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4조를 위반했다거나, 영구분단으로 고착될지 모른다는 주장으로 또다른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의 틀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해법은 현실정합성이 높다. 박정희 정부의 내정불간섭과 상호불가침 및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추진(1973년 6·23선언),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유엔 동시가입 실현(1991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제시(1989년) 등 보수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통일정책들은 사실상 ‘두 국가 해법’이다.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만들고 수정·보완할 때 주무 장관이었던 이홍구 전 총리는 “우리 통일방안에서 남북연합 단계를 설정함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유엔 동시 가입을 가능하게 했다”며 “이는 한국판 양국체제해결안(two states solution)이었다”고 회고했다.

북한은 이달 하순에 열기로 한 노동당 9차 대회에서 통일·동족·화해를 버리고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관계’의 틀을 제도화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판 두 국가 해법에 대비해야 하는 게 숙제로 던져진 셈이다. 북한은 이번 당 대회를 통해 분단 체제의 북한이 아닌 독립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서 정체성 확립을 위한 사상·이론적 조정을 하고 새로운 대외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해법에 따라 정전 협정을 무력화하고 대한민국과 연계되지 않은 ‘사회주의 독립국가’로서 미국·일본 등과의 관계 맺기를 시도할 것이다.

평화 특사의 임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말 업무보고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 강화를 위한 ‘한반도 평화특사’ 임명을 요구했다. 통일부는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4월까지를 한반도 정세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고, 정 장관이 한반도 평화특사로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수행하길 원하고 있다.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를 재개해 종전선언 등을 추진하려면 한반도 평화특사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아직 평화특사를 임명하려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의 주문대로 이재명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특사를 임명해 중국과 미국 등에 파견하려면 사전에 관련국과 협의가 전제돼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18∼2019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작동했을 때 한국과 북한, 미국 정상이 정보 당국을 동원해 톱 다운 방식으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점을 참고해야 한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단절돼 비밀 접촉 자체가 어려운 조건에서 특사를 통한 우회로를 활용하는 게 유일한 해법일 수 있다. 전략적 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미·중은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당장 한반도 문제에 집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 대한민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하기 위해 특사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반도 평화 특사가 정해진다면 우선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도록 미국과 중국·러시아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동시에 한국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한반도 평화 공존 프로세스를 가동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미·중 두 나라는 한국 전쟁의 교전국이자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결단한다면 2(미·중)+2(남북) 또는 4자 회담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최근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 17건에 대한 제재를 면제하기로 결정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염두에 둔 조치일 수 있지만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노딜을 경험한 북한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성의’ 표시다. ‘제재 대 자력갱생의 정면돌파전, 장기전’에 돌입해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에 ‘성과’를 거둔 북한을 움직이려면, 북·미 관계 정상화와 같은 큰 선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희망과 달리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의 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우리도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정전체제의 구조 변화를 가져올 평화협상에 대비해야 한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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