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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카르텔 정치 깨는 새로운 정치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2026.02.0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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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예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정치를 목도하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요즘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갈등이다. 선거를 앞두고는 외연을 확장하거나 당내 갈등을 최소화해서 단합된 모습을 보이려는 게 상식적인 일이겠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 내부는 오히려 시끄럽다. 당내 갈등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평가나 심지어 잠재적 지지자들의 비판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선거 앞둔 여당 갈등과 야당 분열
당 장악 위해 강경 지지층만 신경
정치의 독과점 체제가 문제 원인
국민도 카르텔 정치에 피곤함 호소

국민의힘은 노골적으로 분열로 나아가고 있다.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했고 그를 지지하는 인사들에 대한 징계도 서슴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율은 20%에 머물러 있고 코앞으로 지방선거가 다가왔는데도 ‘자해적’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외형적으로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외연 확대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을 둘러싼 당내 갈등의 본질은 국민의힘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명분상 지방선거를 내세우고 있지만 합당 추진의 실질적 목표는 당내 정치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야당이 당내 분열을 ‘자초’하거나 대통령 임기 초부터 여당 내 갈등이 본격화하는 일은 과거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이렇게 된 것은 정당 정치의 작동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 지지율이 어찌하든 당 대표로서는 이 당을 ‘내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당을 장악하면 향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게 되고,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에서 보여준 것처럼 ‘비명횡사’로 반대파를 쫓아내면, 강화된 당내 입지로 차기 대통령 선거의 당 후보가 될 수 있다. 어차피 양극화되어 있는 정치 구도에서 상대방이 싫으면 내가 마음에 드는 후보가 아니더라도 나를 찍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런 계산으로 인해 당내 분란 속에서 정청래 대표나 장동혁 대표가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 이들에게 중요한 존재는 당내 결정에 적극 참여해서 영향을 미치는 강경 지지층일 뿐, 대다수 유권자나 당의 온건 지지자조차 부수적 관심의 대상이다.

이런 정치가 가능한 까닭은 경쟁이 제한적인 카르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국 수준에서는 양당제로 보이지만, 하위 단위로 내려가면 많은 곳에서 사실상 일당 체제가 만들어졌다. 전국적으로는 과점, 지역적으로는 독점 체제인 것이다. 그동안 써 오던 한 회사 상품의 품질이 나빠지면 다른 회사 상품으로 옮겨 가야 하는데, 가게에서 한 회사 제품만 팔고 있으니 무슨 짓을 하든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시장 경쟁에서 카르텔이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처럼, 정치 경쟁에서도 카르텔은 유권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권자보다 정당 공천이 정치인들에게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공천 헌금 사태도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틀 속에서 발생한 것으로, 정치 부패 역시 이런 카르텔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정당 구도를 깨지 않으면 유권자를 무시하는 그들만의 ‘딴 세상 정치’를 고칠 수가 없다.

오늘날의 정당 구도는 1990년 3당 합당이 그 기원이다. 30년 이상이 된 낡은 정치적 틀 속에 갇혀 살고 있다. 그새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지만 정당 정치는 바뀌지 않았다. 삼성전자나 애플이 소비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면서 끊임없이 혁신과 기술 개발에 힘쓰는 까닭은 화웨이나 샤오미와 같은 경쟁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고치기 위해서도 카르텔을 파괴할 수 있는 위협적인 경쟁 세력이 나타나야 한다. 사실 대다수 국민은 선택을 강요받는 이런 카르텔 정치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중앙일보-경향신문이 지난 연말에 함께 행한 조사에서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해 국회 내 정당은 몇 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평균 4.7개였다. 민주당 지지자의 평균은 4.9개, 국민의힘 지지자의 평균은 4.2였다. 정당이 두 개면 된다는 응답은 전체의 7%에 불과했다.

카르텔 정치를 깨트리려면 지역주의 거대 양당에 유리한 현 선거제도의 개정이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새로운 정치를 한번 해 보겠다고 뜻을 모아 달려드는 비전과 역량을 갖춘 정치적 창업자들(political entrepreneurs)이 나타나야 한다. 정당이 이런 지경이면 당내에서 이런저런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거나, 신당 창당의 움직임도 생겨날 법도 한데 그런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리보전에 너무 진심이거나 딱히 별로 다를 바 없는 고만고만한 작은 이들로 정치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 정치가 너무 작아졌다. 제도권 안에서 움직임이 없다면 밖에서라도 이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을 규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봐, 해 보기는 해 봤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던 창업 세대의 도전 정신이 정치적으로도 그리워진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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