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지난 8일 일본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은 이재명 정부와의 협력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양국이 갈등 현안으로 부각하지 않도록 관리하던 과거사 문제가 돌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X(옛 트위터)에 “다카이치 총리님의 중의원 선거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도 우리의 신뢰와 유대를 바탕으로 한·일 양국이 보다 넓고 깊은 협력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적었다. 통상 총리 정식 선출 뒤 보내는 축전에 앞서 이 대통령이 SNS로 먼저 축하를 보낸 건 각별한 배려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방일해 다카이치 총리와 회담했고, 함께 드럼을 치면서 친교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 이는 동시에 모처럼 선순환의 흐름을 탄 한·일 관계 개선의 기류를 이어갈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자민당이 대승하자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두고 적지 않은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다카이치가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계승하는 강경한 보수 성향의 정치인으로 꼽힌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앞서 그는 일본의 사죄를 담은 1993년 고노 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등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10월 취임한 뒤에는 이런 우익 성향 표출을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다카이치 내각은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을 통해 출범, 소수 여당으로서 국내정치적 기반 자체가 취약했기 때문이다. 한·일 갈등을 다시 불지펴 얻을 실익이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 압승으로 오히려 다카이치 총리가 다시 역사수정주의적 노선으로 회귀할 여지가 생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오는 22일 일본이 부당하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기념하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가 다카이치 총리의 ‘우익 본능’을 건드릴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13년 연속으로 차관급인 정무관을 행사에 보냈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11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행사에 각료를 보낼 것이냐는 질문에 “정부 대표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이번 행사를 어느 정도로 기념할지가 향후 한·일 관계의 향방을 예측할 첫 번째 가늠자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아직은 다카이치 총리가 ‘전략적 우군’인 한국과의 관계에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이 동맹을 상대로도 일방주의 기조를 내세워 압박하는 데다 대만해협 문제로 촉발된 중·일 갈등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자민당 득표율은 36%로 지난 선거에 비해 지지율이 크게 반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카이치 내각도 당장은 파격적인 행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짚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치인 시절의 다카이치와 총리로서의 다카이치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며 “총리 취임 이후에는 한·일 협력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