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한국노총을 시작으로 노·사 단체와 노동정책을 놓고 정례적으로 논의하는 협의체를 공식 운영하기로 했다. 정부와 노사 간 양자 형태의 공식·정기적 협의체를 가동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노동부는 9일 ‘한국노총-고용노동부 부대표급 운영협의체(노정협의체)’를 공식 발족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한국노총뿐 아니라 오는 11일 민주노총, 24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도 각각 정례 실무협의체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노정협의체는 매달 노동부 노동정책실장과 한국노총 사무처장이 참여하는 실무협의체와, 분기마다 노동부 차관과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참석하는 부대표급 운영협의체로 운영된다.
정부가 노사와 직접 소통하는 공식 협의체를 구성하게 된 배경에는 노동계의 강한 요구가 있다. 민주노총은 줄곧 노정교섭(정부와 노동조합이 사용자 측을 제외하고 정책·제도 현안을 놓고 협의하는 방식)을 요구해왔는데 그에 대한 정부의 응답인 셈이다. 지난해 9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불평등과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전면적인 노정교섭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후 김민석 국무총리와의 면담에서도 같은 취지의 요구를 전달했고, 김 총리는 “민주노총이 새 정부와 새로운 시대의 수준에 맞는 대화와 협력의 체제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정부는 사측(경총)과도 협의체를 구성해 노사 모두를 만난다는 방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노조의 발언권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별도의 노정 대화를 요구하는 것은 정부를 상대로 직접 정책적 요구를 전달하겠다는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노조와 사측, 정부 모두가 참여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출범하기도 전에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정 협의체는 소통을 강화하자는 취지일 뿐, 협의나 결론을 도출하는 기구는 아니다”라며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도 재정비해 곧 출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기 어려운 이유로 ‘노정 간 불신’을 꼽고 있는 만큼, 노정 교섭을 통해 이러한 불신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사자인 노사가 빠진 각각의 협의체가 ‘소통’이 아닌 각 주체의 ‘요구’를 전달하는 창구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한다. 박지순 교수는 “노동 문제는 본질적으로 노사정이 함께 풀어야 할 사안”이라며 “노조와 사측 양 당사자 중 하나가 빠진 채 정식 협의체를 만드는 것은 원칙에도 맞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