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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때문에… 美선수단, 박수 대신 이런 눈빛 받는다

중앙일보

2026.02.09 12:00 2026.02.0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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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밴스 미 부통령이 8일(현지시간) 딸 미라벨을 안고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선수들이 겨뤄야 할 대상은 상대 선수나 자신의 기록만이 아니다. 정치적 역풍도 넘어야 할 난관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향한 반발이 선수단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다. 선수들이 박수를 받아야 할 무대가 정치의 표적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올림픽에 참가한 미 대표단이 자국 정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 폄훼 행보, 그리고 여러 나라의 분노를 일으킨 이민 단속 때문”이라고 짚었다.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반감과 그곳을 대표해 온 선수들에 대한 연민이 뒤섞여있다는 진단이다.

지난 6일 밀라노 산시로에서 열린 개막식 풍경이 대표적이다. 미 대표단이 입장하는 순간 전광판에 JD 밴스 미 부통령과 우샤 밴스 여사가 등장하자 관중석 곳곳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미국 내 올림픽 중계사인 NBC가 야유 소리를 삭제한 채 평온한 화면만을 송출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정치 논란이 불거진 데는 스키 선수 헌터 헤스의 발언이 한몫했다. 헤스는 최근 현지 인터뷰에서 “미국 국기를 달고 있다고 해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8일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려 헤스를 “진짜 루저”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그렇다면 대표팀에 지원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헤스를 공격했다. 국가수반이 올림픽 경기 중인 자국 선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건 극히 이례적인 일로, 미 대표단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인력이 대회 기간 미 대표단 안전팀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밀라노는 당신들을 혐오한다”는 시위가 일며 현지 분위기가 험악해진 면도 있다. 쥬세페 살라 밀라노 시장은 이탈리아 방송에서 “ICE는 사람을 죽이는 민병대와 다름없다”며 “이들이 밀라노에 오는 것을 절대 환영하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이유로 미 피겨·하키·스피드스케이팅 연맹은 선수단 환대 공간 이름을 ‘아이스 하우스’에서 ‘윈터 하우스’로 바꿨다. ICE와 발음이 동일해서다. 미 피겨 관계자는 “우리가 미끄러지는 표면(ice) 자체가 정치적 단어가 될 줄 몰랐다”고 NYT에 말했다.

선수들은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에 네 번째 출전한 알파인 스키 선수 미케일라 시프린은 관련 질문에 넬슨 만델라의 발언을 인용해 “포용의 가치, 다양성과 친절과 나눔의 가치, 끈기와 근면함 같은 가치를 대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ICE 규탄 시위가 시작된 미네소타 출신 미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켈리 패넥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대표하고 싶은 건 1년 중 가장 추운 날에도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싸우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소수자인 미 피겨 선수 엠버 글렌은 “사람들은 ‘너는 운동선수니까 네 일만 해, 정치 얘기하지 마’라고 하지만 정치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성소수자 정책에 대해서도 조용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탈리아인 바바라 바릴레는 NYT에 “우리는 지금의 미 정부를 큰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선수들이 자기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야유를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올림픽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근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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