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대미투자특별법(특별법) 처리 이전이라도 대미 투자 후보 프로젝트를 미리 검토하기로 했다. 국회에서 특별법 처리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법안 통과 전이라도 정부 차원에서 한ㆍ미 합의 이행 의지를 보여줄 가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10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한ㆍ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 이행을 위한 임시 추진체계 구축방안’을 심의ㆍ의결했다.
정부는 그동안 특별법 처리 전 투자 프로젝트 논의가 어렵다는 입장이었지만, 미국 측의 압박이 거세지자 법 통과 전에도 투자처 검토 등 실무 절차를 준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선회했다. 특별법은 다음 달 9일 이전에 처리될 전망이지만, 시행령 제정 등 준비 기간을 감안하면 실제 시행까지는 3개월이 더 필요하다. 이 기간에 신속한 투자 집행을 요구하는 미국과의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구 부총리는 “국내법이 정한 정상적인 입법 절차를 밟고 있지만, MOU 이행 과정에서 한ㆍ미 간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거나 신뢰가 훼손되는 것은 국익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행 전까지 행정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양측이 발굴하는 후보 프로젝트에 대해 사전 예비검토를 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겠다” 고 말했다.
정부는 특별법 시행 전까지 대외경제장관회의를 대미 투자 후보 프로젝트를 검토할 임시 컨트롤타워로 운영하기로 했다. 특별법에 따라 한미전략투자공사에 설치하는 운영위원회를 대신하는 역할이다. 산업통상부 장관과 관계 부처 차관 등이 참석하는 ‘전략적 투자 MOU 이행위원회’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이행위원회 산하에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업예비검토단’을 설치해 한ㆍ미 양측이 발굴한 후보 프로젝트의 상업적 합리성과 재무 여건 등을 사전에 점검하기로 했다. 다만 최종적인 투자 결정과 집행은 특별법 시행 후 이뤄진다. 현재 미국 측과는 원전과 에너지 분야 등을 중심으로 투자 프로젝트가 거론되고 있다.
한편 산업부는 이날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통상추진위원회를 열고 비관세 분야 합의 이행상황도 점검했다. 미국 측은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 외에 비관세 장벽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전날 조현 외교부 장관도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미국이 한국과의 비관세 장벽 관련 협상에서 진척이 없을 경우 한국에 대한 관세를 인상해 무역 적자를 개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ㆍ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공동설명자료(팩트시트)를 통해 자동차, 농업, 디지털 분야 등에서의 비관세 장벽을 완화하기로 했다. 농ㆍ축산물에 대한 검역 절차 개선, 디지털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에 대한 차별 금지 등이 주요 골자다. 최근 미국 측은 한국 정부의 디지털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양국은 지난해 12월 비관세 장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를 열기로 했지만 의제 조율 등을 이유로 회의가 개최되지 않았다. 폴리티코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한국 측의 디지털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한 미국 측의 불만이 회의가 연기된 주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통상추진위원회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 개인정보위원회 등도 참석했다. 디지털 규제와 농축산물 검역 문제 등을 다루는 소관 부처다. 여 본부장은 “비관세 분야 주요 현안들이 관세 조치와 결부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가 긴밀히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릭 스위처 USTR 부대표는 10일 한국을 방문해 여 본부장 등과 만나 관세 재인상 문제 등을 논의한다. 비관세 장벽 완화 등이 주된 의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