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쟁권 회복 세력의 선거 압승과 美 쌍수 환영 의미는
트럼프와 다카이치 '찰떡궁합'에 점점 밀착하는 美日
'中 견제 방패'로 떠오르는 日 역할…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율곡로] 경계할 일본 제국 부활 시나리오
日 전쟁권 회복 세력의 선거 압승과 美 쌍수 환영 의미는
트럼프와 다카이치 '찰떡궁합'에 점점 밀착하는 美日
'中 견제 방패'로 떠오르는 日 역할…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일본 집권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사상 최다 의석수를 얻는 압승을 거둔 건 세계사적 조류를 읽고 있었다면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미국, 중국, 러시아의 뚜렷한 제국주의 기조 부활, 유럽의 몰락과 그 반작용, 남미의 '블루 타이드' 확산과 궤를 같이하는 우클릭 현상이다. 일본인들이 '강한 일본'을 원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거 세계 최강을 다퉜던 제국에 대한 향수일 가능성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이번 선거 결과가 일본을 무장 해제시켰던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초유라는 일본 언론 평가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심상치 않다. 일본은 패전 이전 제국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걸까.
마거릿 대처를 본보기 삼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중의원 해산이란 승부수를 던져 단일정당 최초로 3분의 2 넘는 의석을 쓸어갔다. 정치 스승 아베 신조를 뛰어넘는 파격적 포석이다. 특히 다카이치가 선거를 앞두고 중국을 자극한 건 의회 해산보다 더 과감한 카드였고, 대승의 요인 중 하나다. 대만 침공 시 개입 불가피 발언은 중국의 과도한 대일 압박을 불렀고, 이는 결과적으로 반중 감정과 애국주의, 안보 불안을 키웠다. 외교적으론 지나치게 민감했으나 다분히 계산된 한 수였다. 사실 기술적으로 다카이치의 '유사시 군사력 행사'는 당연한 논리다. 미국은 대만 문제에서 '전략적 모호성' 대신 '유사시 개입'으로 전환했고,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이므로, 대만 피격 시 일본은 자동 개입하는 구조여서다. 결국 당연한 일로 논란을 조성해 정치적 이득을 본 셈이다.
이런 일련의 장면은 거대 열강들이 패권을 다퉜던 20세기 초중반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이란 공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의 공세적 영향력 확장과 대만 위협 등이 동시다발로 진행하는 상황은 동아시아 정세의 대격변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미국을 뺀 나머지 거대 제국을 모두 굴복시켰던 일본은 지금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중국의 발호와 러시아의 재기를 동시에 견제해야 하는 패권국 미국은 향후 어떤 구도를 그리고 있을까. 우리는 일본 정치 지형의 재편을 바라보면서 이런 종합적 분석과 대비를 해야 한다.
미국은 한 세기 전부터 이이제이(以夷伐夷) 전략에 능했다. 불개입 주의를 고수할 땐 일본의 아시아 지배를 실리 측면에서 사실상 묵인했지만,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고 필리핀 등을 점령하자 핵 공격까지 불사해 일본을 다시 섬 안으로 고립시켰다. 한때 러시아 등을 묶어놓을 일본의 아시아 경찰 역할을 인정했으나 2차 대전 막판엔 소련과 한 편에서 일본을 압박했다. 소련과 냉전 시기엔 잠자던 중국을 깨워 손잡고 과거 주적이었던 일본과도 동맹을 강화해 소련을 견제했다. 한반도 정세는 이렇게 세계 질서를 움직여온 미국의 행보에 따라 출렁였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패권국 미국이 지금 일본의 행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우리 미래 설계에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중국 견제가 최대 과제인 미국은 다카이치 총리와 자민당의 압승을 환영하며 여러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카이치 내각이 개헌을 통한 '보통국가'(전쟁할 수 있는 국가) 회귀를 추구하는 걸 고려할 때, 이는 승전국 미국이 패전국 일본에 무장 해제를 강요하는 내용을 담은 '평화헌법'의 용도 폐기를 시사한 것일 수 있다. 과거 적에게 채웠던 족쇄를 풀어주며 미국 이익에 부합하는 한 전쟁할 권리를 회복해주겠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다카이치의 '대만 유사시 자위권' 발언은 이런 미일 양국의 공감대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자민당은 이제 중의원에선 개헌선을 넉넉히 확보했다.
실제로 미 정가에선 '중국 공산 제국주의에 맞서는 수호자'로서 일본의 역할을 부각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다카이치 내각은 서로 이해관계도 딱 들어맞는다. 현재 미국은 일본이 방위비를 더 늘려 안보 부담을 더 지길 요구하고, 이는 마침 보통국가로 나아가려는 일본이 원하는 바다. 당분간 서반구 완전 장악에 집중하고픈 미국은 일본의 중국 견제 역할이 확대되길 원한다. 대만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 주요 전략 지역은 미국의 영향권에 있고, 이들 지역에서 군사 충돌이 발생하면 일본은 자동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걸 주지해야 한다.
구한말 정세가 재연되는 듯한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일본 정부의 친미 성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미일 관계가 점점 더 밀착하는 현상도 간과해선 안 된다. 한미 동맹은 함께 피를 흘린 혈맹 관계이긴 하지만, 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은 일본과 동맹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판을 짜는 주체는 패권국이니, 패권국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제국을 세워본 일본이 더 잘 체감하는 듯하다. 일본은 세계 패권을 다퉈본 경험이 있고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극일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력과 외교술로만 담보될 수 있다. 일본의 행보를 주시하며 국제사회에서 우리 현주소를 재점검할 때다.
역사는 순환한다. 그리고 대부분 주요 사건은 방심하고 해이했기에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 일어났다. 과거 미국과 영국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묵인할 것이라고, 일본이 아시아 동쪽 대부분을 지배할 것이라고, 미국과 일본이 전면전을 벌일 것이라고 먼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가 국제 정세에 어두웠기 때문이다. 동남아 진출과 러시아 견제를 위해 일본의 동아시아 지배를 용인하고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을 키웠던 미국이라면 중국의 위협을 막고자 일본의 재기에 힘을 싣는 전략적 변화 가능성이 상상에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안보 문제에선 1%의 가능성이라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예측하고 대비해야 낭패를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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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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