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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으니 연기하는 거죠" 90세 신구, 걷는 법부터 바꿨다

중앙일보

2026.02.10 00:47 2026.02.10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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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불란서 금고 -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 제작발표회에서 연극 주역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영주, 장진 감독, 신구, 성지루, 주종혁. '불란서 금고'는 은행 건물 지하의 쇠창살 안 금고를 열기 위해 모인 다섯 사람이 금고 안에 든 것을 모두 다르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작품이다. [사진 뉴스1]

“살아있으니까, 평생 해왔던 일이니까 하는 거죠. 밥 먹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에게 연기란, 아직 살아있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자 밥 먹듯 하는 일상 같은 것이었다.

올해로 아흔 살이 된 배우 신구가 오는 3월 7일 개막하는 연극 ‘불란서 금고’에 출연한다. ‘불란서 금고’는 영화 ‘아는 여자’(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등을 연출하고 쓴 장진 감독이 연극 ‘꽃의 비밀’(2015) 이후 11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은행 건물 지하를 배경으로,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모인 은행 강도 다섯 명의 욕망을 그린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신구는 이 작품에서 주연인 전설의 맹인 금고털이 역을 맡았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놀(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는 개막을 한 달 여 앞둔 ‘불란서 금고’의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작·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을 비롯해 신구·장현성·정영주·금새록 등 출연 배우 12명이 참석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행사의 스포트라이트는 신구에게 집중됐다. 출연진들이 줄줄이 “신구 선생님이 캐스팅 됐다는 얘기를 듣고 출연을 결심했다”(성지루·장영남·장영주·장현성)고 밝혔기 때문이다.

작품은 시작부터 신구에 대한 헌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장 감독은 집필 계기에 대해 “지난해 5월 신구 선생님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큰 자극을 받았다. ‘왜 나는 저분을 내 연극에서 만나 뵙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되든 안 되든 선생님을 무대에 모시게 글을 써보자는 생각에, 신구 선생님의 음성을 떠올리며 첫 대사 하나만 잡고 시놉시스 없이 쓴 얘기”라고 설명했다.

장 감독이 캐스팅에 가장 공 들인 것도 신구였다. 장 감독은 영화 ‘박수 칠 때 떠나라’(2005년)를 통해 신구와 작업한 적은 있지만 연극 무대에선 이번이 첫 만남이다. 그는 “9월쯤 탈고를 한 다음 날 따끈따끈한 프린트본을 갖고 선생님을 가장 먼저 찾아뵈었고 딱 한 달 뒤에 선생님 생신 차 만난 식사 자리에서 술 몇 잔 하며 승낙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신구는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막상 작업을 해보니 극복하기 힘든 점도 있고, 작품 해석 등 여러 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 나이가 들어 노욕을 부린 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배우 성지루(오른쪽)가 10일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연극 '불란서 금고 -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신구와 더블캐스팅 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불란서 금고'는 은행 건물 지하의 쇠창살 안 금고를 열기 위해 모인 다섯 사람이 금고 안에 든 것을 모두 다르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작품이다. [사진 뉴스1]
“몸이 신통치 않다”고도 했다. 신구는 이날 금고털이 역에 더블캐스팅 된 배우 성지루의 부축을 받고 무대에 등장했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지 못해 옆에 앉은 성지루 배우나 장진 감독이 다시 마이크로 질문을 반복해주기도 했다. 신구는 “몸이 마음만큼 움직여주지 않는다”며 “대사를 외우는 일도 쉽지 않다, 외웠다고 생각한 것도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 감독은 “작품 승낙 후 연습 기간까지 선생님은 무대에 오를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면서 “집안에서 걷는 것부터 연습을 위한 준비만 몇 달 해주셨다”고 했다. 그러나 “어제도 성지루 배우가 요만큼 틀린 대사를 교정해 줄 만큼 연습 진행 잘 되고 있고 관객 만나기엔 요만큼도 걱정이 없다”고 덧붙였다.

신구와 같은 역에 더블캐스팅 된 성지루 역시 신구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평소 연습실에서 신구를 ‘아버지’라 부른다는 그는 “아직도 (신구가) 무대 위에서 툭툭 내뱉은 호흡을 볼 때마다 왈칵 눈물이 날 만큼 경이롭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만이 갖고 있는 맹인의 모습은 무엇일지 찾고 있다”며 “닮아가려고 노력하면서도 제 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며 장 감독은 “‘불란서 금고’가 선생님의 (마지막이 아닌) 많은 작품 중 어느 한 작품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저희는 선생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그게 이 작품의 의미”라고 말했다.




최민지(choi.minj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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