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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의 테아트룸 문디] 줄을 타면 신이 났지

중앙일보

2026.02.1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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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극작가·연출가
최근에 공연 집단 컨컨의 ‘곡예사 훈련’이라는 공연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랩(Lab) 시리즈의 일환이다. 랩 시리즈는 젊은 공연 예술가들에게 실험적인 워크숍을 발표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17년째 진행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곡예사 훈련’은 서커스를 하는 세 광대가 출연해 곡예를 직접 연마하는 과정을 무대 위에서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일종의 토크쇼처럼 서커스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손옥주)가 이야기의 물꼬를 트면, 출연자들이 그들의 곡예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움직임을 보여주는 식이다.

처음엔 그저 그런 공연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들의 몸이 움직이자 그리고 그 몸에 그들의 인생을 덧입히자 공연의 결이 달라졌다. 교육받을만한 변변한 기관이나 제도는 잠시 생겼다가 사라지고, 이후론 혼자 기예를 익혀야 하는 한국의 서커스 광대들.

스페인의 서커스 학교에 입학하지만 코로나가 터져 돌아오고, 연봉이 50만원인데 SNS로 접한 곡예를 배우고 싶어 80만원짜리 휠(wheel)을 제작하고, 줄 위에서 버틸 힘을 기르려고 10㎏의 쇠를 배낭 속에 넣고 걸어 다니는 이야기를 그들은 웃으면서 했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공포와 싸우며 익힌 기술들, 중력을 벗어난 아름다운 기술들을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 『피터 팬』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피터 팬이 죽어갈 때 팅커벨은 “여러분의 박수가 피터 팬을 살릴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외쳤다. 같은 마음이었을까.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아프지만 위트 있고 고독하지만 꾸준한 그들에게 진심을 다해 오랫동안 박수를 쳤다. 그들의 이름은 김준봉·권해원·박상현이다.

국가는 문화 강국을 외치며 문화 관련 예산을 증액한다는데, 화려한 K컬처의 이면은 이렇게 쓸쓸하다. 그 쓸쓸함에 굴하지 않고 오늘도 공포와 싸우며 중력을 거부하는 그들이야말로 K컬처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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