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투명하게 눈부신 드레스라니!” 관람객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이 작품 앞에서 탄성을 지릅니다. 밤하늘처럼 어두운 전시장 가운데 하얀 매화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린 듯한 풍경입니다. 철사에 투명한 구슬을 꿰고 엮어 만든 이 드레스의 제목은 ‘백매(白梅)’. ‘한국 패션아트의 선구자’ 금기숙(73)의 솜씨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입니다.
서울 안국역 인근의 서울공예박물관(관장 김수정)은 요즘 ‘금기숙 기증 특별전’(3월 22일까지, 월요일 휴관, 무료)을 보러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23일 개막한 이래 지난 10일까지 37만 명이 전시를 보았고, 이는 2021년 11월 말 박물관 개관 이래 역대 최다 방문 기록입니다. 작가 이름도 낯설고 ‘패션아트’라는 장르는 더 생소하지만, 사람들은 ‘금기숙의 마법’에 홀린 듯이 전시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금기숙은 종이와 직물, 그리고 철사와 구슬, 스팽글, 리본, 단추에 이르는 다양한 재료로 옷을 만드는데, 이 옷들 하나하나가 궁극적으론 섬세하고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공간 예술이 됩니다. 작가가 1995년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진사 연화 청자 드레스’에선 동·서양의 미, 재료, 시간의 경계를 넘고자 한 작가의 야심과 실험 정신이 엿보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이 전시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의 작업에 흥미롭고 통쾌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재료의 반전입니다. 어쩌다 그는 철사로 엮어 만드는 옷을 생각하게 됐을까요. 충북 옥천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 감나무 아래 떨어진 감꽃을 모아 명주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곤 했다고 합니다. 예술은 이렇듯 자유로운 감각과 놀이, 기억과 상상에서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실을 그가 다시 일깨웁니다.
둘째, 장르의 반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패션과 공예,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가 그의 작품에선 아무런 의미 없습니다. ‘이게 뭐지?’ ‘저것도 디자인인가? 예술인가?’ 등 그가 남들이 던지는 말에 쉽게 흔들렸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요. 전시를 기획한 김성미 학예연구사의 말마따나 “무언가를 엮고 있는 행위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끌림”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작가는 지난해 자신의 주요 작품 55건 총 56점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덕분에 그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못해 기록되지 못하고 묻힐 뻔했던 작업이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