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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암살 공포에 잠 못든다…22년 전 '용천역 폭발' 미스터리 [장석광의 세계는 첩보 전쟁]

중앙일보

2026.02.10 07:14 2026.02.1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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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지난달 3일 북한 TV에서 이른바 ‘최고 존엄’의 암살을 다룬 영화가 방영됐다. ‘대결의 낮과 밤’은 반체제 세력이 외국 정보기관과 공모해 김정일의 암살을 기도하는 과정과 실패를 그렸다. 이야기는 20년 후인 2024년 김정은을 노린 또 다른 침투 시도를 예고하면서 막을 내린다.

영화는 국제 화물열차와 김정일 동선이 겹치는 설정, 질산 비료를 이용해 폭발을 ‘사고’로 위장하는 플롯, 실존 지명을 살짝 비켜 간 가상의 ‘용암역’ 등 22년 전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소환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2004년 4월 22일 오후 2시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154명이 사망하고 1300여 명이 부상했다.

반체제 세력, 외부와 공모 서사
2004년 용천역 폭발 상기시켜
북, 부인에도 모사드 개입설 솔솔
최근 상영 후 김정은 경호 강화

2004년 4월 발생한 북한 용천 열차 폭발사고 현장 모습. [뉴시스]
북한 “용천역 폭발은 단순 열차 사고”
폭발의 원인을 둘러싸고 단순 열차 사고설, 김정일 암살 기도설, 모사드 공작설이 제기됐다. 단순 사고설은 북한의 공식 입장이다. 북한 중앙통신은 질산암모늄 비료를 실은 화차와 유조차를 옮기던 중 부주의로 전기선에 접촉해 폭발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기술적 경위 제시에 그쳐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김정일 암살 기도설은 체제 실패의 책임을 외부의 적대적 음모로 전환하고 내부 통제를 정당화하는 서사로 활용되면서 현재까지도 소멸하지 않는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김정일이 이미 용천역을 통과한 뒤 8~9시간이 경과한 시점에 폭발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낮다는 평가다.

정보 세계의 관심을 끈 것이 모사드 공작설이다. 사건 전후에 포착된 몇 가지 이례적 정황에서 출발한 가설이다. 사고 당시 열차에 탑승해 있던 시리아 과학연구센터 소속 연구원 12명이 전원 사망했다. 모사드가 시리아군 장교와 과학자들의 평양행 동선을 추적하고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는데, 이는 『기드온의 스파이』의 저자 고든 토머스의 추정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 직후 북한 당국이 휴대전화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고 약 1만 대의 휴대전화를 회수한 점도 의문을 키웠다. 폭발 현장 인근에서 테이프로 감긴 휴대전화기가 발견됐다는 주장까지 더해지면서 북한이 휴대전화를 기폭장치로 사용한 가능성을 의심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반론도 존재한다. 모사드의 개입을 입증할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현재까지 공개된 바 없다. 제기된 정황들 역시 대부분 간접적이며 추론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서사가 되풀이될까.

사고 이후 한국에서 보낸 구호물자 트럭이 경의선 철길 옆 도로를 따라 남방한계선을 넘어 북으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이 북한 용천에 보낼 구호품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보 세계선 모사드 공작설 계속 나와
‘대결의 낮과 밤’은 반체제 세력과 암살을 공모하는 외국 정보기관을 등장시킨다. 해외 공작, 기업 위장, 표적 암살이라는 요소는 모사드의 이미지와 겹친다. 영화는 용천역 폭발사고를 단순한 사고나 내부 음모의 차원을 넘어 모사드가 개입한 ‘최고 존엄 암살 기도’의 서사로 확장하고 있다. 북한은 왜 지금 이 같은 연출을 선택했을까 ?

북한이 영화를 통해 호출한 것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 축적돼 온 위협 인식의 역사다. 용천역 폭발사고를 시리아 과학자를 제거하기 위한 모사드의 공작으로 해석한 순간부터 모사드는 단순한 외국 정보기관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언제든 지도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실체적 위협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용천은 시작점이었다.

이후 중동에서 반복된 이스라엘의 표적 제거 작전들은 그 인식을 현실로 고정하는 계기가 됐다. 2007년 시리아 핵시설 공습, 북한과 연계된 군사협력 책임자 암살, 미사일 과학자 제거로 이어진 일련의 작전은 모사드의 실행력을 북한에 각인시켰다. 그 인식은 최근에도 재확인됐다. 2024년 레바논과 시리아 전역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던 수천 개의 호출기와 무전기가 동시에 폭발한 사건은 용천역 폭발을 연상시켰다.

지난해 7월 김정은은 모사드의 사례를 직접 언급하며 지휘부 제거를 상정한 대응 전략 강화를 지시했다. 공식적으로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군사 조치였지만, 이면에는 ‘자신이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개인적 불안이 짙게 배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영화 ‘대결의 낮과 밤’의 한 장면. [NKNEWS]
과잉 연출, 오히려 공포 드러내
이 같은 인식은 영화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영화의 표면적 메시지는 목숨 바쳐 김정은을 사수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상영 이후 김정은의 경호 수위가 한층 강화됐다는 정황도 전해진다. 그러나 과잉된 연출은 역설적으로 김정은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그만큼 커졌음을 반영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여기까지의 논의는 용천역 폭발사고를 모사드 공작으로 가정한 정보 전문가의 상상에 기반을 둔다. 여기에 ‘어둠의 제왕’으로 불리던 모사드의 다간 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을 만큼 현장에서 발군이었던 후배 A의 기억을 겹쳐본다.

모사드의 해외 공작은 현장 활동팀과 지원팀으로 분리된다. 현장팀은 폐쇄적인 고위험 국가에서는 요원의 직접 침투를 최소화하고 현지 불만 세력이나 소수민족, 국경 지대 협력자 등 현지인을 활용한다. 지원팀은 인접국에 머물면서 통신 연락, 현지 협력자와의 연결, 위기 대응을 맡는다. 모사드 해외 공작의 원칙이다.

2004년 4월 모사드 공작팀이 한국에 입국했다. 명목은 산업연수생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 테러 용의자 동향 확인. 지원에 나선 A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매사에 철저하던 그들이 회의 도중 수시로 자리를 비웠다. 테러 용의자와 무관한 유대인 자치주와 수시로 위성 통신을 했다. 유대인 자치주는 북한 벌목공들이 많이 나가 있는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의 지역이다. 모사드 팀은 이후 속초항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며 “현지에서 활동 중인 동료와 합류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시점을 맞춰보니 용천역 사고 일주일 전 입국해 사고 사흘 뒤 출국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김정은의 영화가 당시 품었던 의문을 소환한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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