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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이 대통령 어제의 말 오늘의 말

중앙일보

2026.02.1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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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지도자들의 내면(soul)을 탐색해 온 정치학자 월러 뉴웰이 “지도자라면 대담해야 하고, 기존 입장을 고수해야 하지만 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섰을 때조차 기존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걸 뜻하진 않는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념적 일관성이나 정책적 지속성을 원하는 사람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이해한다. 아무리 최고의 선택도 효용이 다하는 순간이 온다. 사람도, 정책도, 제도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원로 학자가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얘기해 왔으나 달리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대통령감이 아닌 이들이 연속으로 집권하는 걸 보면서 8년(4년 중임제)보단 5년이 낫겠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부동산·외교서 과거와 다른 입장
변화 불가피했다면 설명 필요
그래야 억측·냉소 생기지 않아

그렇더라도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선회를 보며 몇 가지 아쉬운 대목이 있다. 숙고의 결과라고 보기엔 단기간 내 변화인 데다 설명도 부족해서다.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을 하지 않겠다”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 게 지난해 5월 말이었다.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많으니까, 집값이 오를 거니까 집을 사자 그런다고 한다. 왜 그럴까 생각을 참 많이 해봤는데, 일부 분석가들에 의하면 부동산이 움직일 때 수요와 공급이 작동하는 것인데 이럴 때 수요를 억제하려고 하면 풍선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원리로 이럴 때는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진보 정권은 기본적으로 수요 억제 정책을 했다. 세금을 부과한다든지, 소유를 제한한다든지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근데 이건 수요, 시장을 이겨내는 것이다. (중략) 정책의 목표는 집값 안정이다. 지금까지의 민주 정부와는 좀 다를 거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숙고한 목소리였다. 합리적이었다. 지난달 하순에도 이 대통령은 “시중엔 50억원이 넘는 데만 보유세를 내게 하자는 이야기도 있더라”면서도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건) 마지막 수단으로 하는 게 좋다. 최대한 뒤로 미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대한 뒤로 미룬다’의 ‘최대한’은 어느 정도였을까. 단, 이틀 뒤 이 대통령은 다주택자 중과세 유예 중단을 발표했고 이후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급기야 비거주 1주택자 불이익까지 시사했다.


부동산 가격이 예상보다 더 올랐을 것이다. 공급책은 덜 먹혔을 것이다. 그래도 이전 난감했던 ‘민주 정부’의 정책으로 돌아가는 듯한 정책을 정당화할 정도인가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예의 갈라치기 언어를 구사할 뿐, 복잡다단한 이면과 고민의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외교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다.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은 지금도 진통 중인데 대통령의 설명이 없다가 갑자기 국회를 탓하는 발언이 나왔다. 검찰 관련 법안을 빼곤 원하는 법을 원하는 때에 통과시켜 왔던 걸 떠올리면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다. 진정 국회 탓인가. 한∙일 관계에서도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있다. 2년 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두고 이 대통령은 “인류 건강에 대한 테러”라고 할 정도로 ‘반일 정서’를 드러내곤 했다. 지금도 방류가 이뤄지는데 아무 말이 없고 일본 정상과 친근한 모습을 보인다. 원래 그런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지정학에선 맞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 대통령이 과거와 달리 행동하기로 했다면 왜 그런지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유사한 ‘반일 광풍’을 덜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현재 모습을 설명함으로써 동료들에게 나아갈 미래를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 말이 달라졌다면 연유를 알려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말에도 힘이 실린다. 오늘의 말이 과거의 말을 설명하지 못하면, 미래의 말이라고 오늘의 말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예정할 수 있겠는가. 설명이 없는 자리엔 대신 추측과 억측, 냉소와 음모가 스며든다. 이 대통령이 이걸 원하는 건 아닐 거라고 믿는다.



고정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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