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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중간지대를 다시 세워야 한다

중앙일보

2026.02.10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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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국제학부 교수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온도는 여전히 높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목소리는 커지고, 말은 점점 거칠어진다. 그러나 정작 많은 사람의 감정은 식어가고 있다. 분노와 조롱은 넘치는데, 신뢰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신호는 양극화 그 자체보다, 그 사이를 지탱해주던 어떤 공간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중간지대의 붕괴다.

동원의 정치가 밀어낸 중간지대
정보와 제도의 왜곡으로 이어져
정치적 중간지대 복원의 목표는
다시 예측 가능한 사회 만드는 것

중간지대는 여론조사에서 말하는 ‘중도층’과 다르다. 어느 당을 찍을지 망설이는 유보의 태도도 아니고, 모든 사안에서 양쪽을 비판하는 태도도 아니다. 중간지대란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정치가 규칙과 절차로 돌아오도록 붙잡아두는 완충 공간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불완전하고 잠정적일지라도 그 결정을 떠받치는 합의의 영역이 필요하다. 중간지대는 바로 그 합의가 쌓이는 제도의 공간이다.

이 말을 조금 더 쉽게 풀어보자. 중간지대는 이미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매일 출근해 일하고, 아이를 키우며, 기술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고, 열심히 살아도 제도가 갑자기 바뀌어 손해 보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구호에는 쉽게 흥분하지 않지만,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데에는 누구보다 민감하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특정 이념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단지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서가 아니다. 이들 사회에서는 중간지대가 제도적으로 유지된다. 타협은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통치의 기술로 이해되고, 정치가 잠시 멈추고 조정하는 시간을 갖더라도 그 과정이 제도 안에서 관리될 것이라는 신뢰를 갖는다.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 개인의 삶은 안정성을 얻는다.

문제는 우리의 정치가 이 중간지대의 공간을 점점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언어는 빠르게 도덕화되고, 상대는 경쟁자가 아니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존재’로 규정된다. 타협은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라 배신처럼 받아들여지고, 유보와 숙의는 무능의 증거로 취급된다. 정책의 옳고 그름은 제도의 설계나 효과보다 ‘누가 말했는가’에 따라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실용적 역량과 제도 설계 능력은 점점 가려진다. 정치에서 동원되는 도덕은 자의적이고 불완전하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가 도덕을 잃어서가 아니라, 도덕을 독점하면서 제도의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 시작된다.

왜 우리 사회에서 중간지대는 사라졌을까. 정치의 작동 방식이 설계와 조정보다 동원과 결집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동원 정치는 명확한 구호와 빠른 판단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불편한 존재는 즉각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분노의 언어에 쉽게 동원되지 않고, 단순한 선악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기 일과 삶에 더 집중하려는 이들은 동원 정치에서 늘 주변으로 밀려난다.

중간지대의 상실은 정보와 제도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정책과 데이터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잘려 전달되고, 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진영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도구로 소비된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구조 위에 놓여 있다. 이렇게 왜곡된 정보와 제도 위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합리적으로 설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무너진 중간지대는 개인의 침묵과 회피로 바뀐다. 이 침묵은 정치적 무관심과는 다르다. 중간지대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정치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고 느낀 사람들이다. 제도 하나가 흔들릴 때마다 대출과 연금, 아이 교육 계획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간 사회를 떠받쳐 온 사람들은 정치적 열정 대신 계산기를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진전은 언제나 이 중간지대가 “이건 아니다”라며 움직일 때 이뤄졌다. 민주화 과정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켜낸 결정적 순간에서도, 이들은 잠시 정치의 중심으로 나와 사회의 축을 움직였고, 역할을 마치면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늘 전면에 서지는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방향을 바꾸는 힘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간지대를 다시 정치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옮겨놓는 일이다. 모든 사안에서 중도를 택하자는 뜻도 아니고, 분노를 지우거나 갈등을 숨기자는 제안도 아니다. 중간지대 복원의 목표는 특정한 정치 노선이 아니라,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세우는 데 있다. 법과 제도의 연속성을 회복하고, 변화하는 사회와 기술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예측 가능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사회의 작동 원리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이 과제를 먼저 현실의 선택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가 다음 단계 정치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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