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기 오대십국(907~979) 시대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드라마 ‘태평년(太平年)’이 대만을 상대로 자발적인 평화 통일을 압박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10년의 기획, 제작비 3억5000만 위안(약 738억원)과 4만여 명의 스태프를 투입한 50부작 대하 드라마 ‘태평년’이 내세운 주제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찾는다는 성어 ‘지과태평(止戈太平)’이다. 지난달 23일 중국중앙방송(CC-TV) 1번 채널에 오후 9시 황금시간대에 편성됐다. 인민일보는 “정통 사극으로는 9년 만에 황금시간대에 편성한 역작”이라고 강조했다.
반전(反戰) 사극 ‘태평년’은 978년 납토귀송(納土歸宋) 사건이 소재다. 항저우를 수도로 삼았던 오월(吳越)국의 군주 전홍숙(錢弘俶, 929~988)이 북송(北宋)의 조광윤(趙匡胤, 927~976)에게 영토와 왕권을 스스로 건넨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했다.
드라마는 전홍숙과 조광윤, 북주(北周)의 2대 황제 곽영(郭榮) 3명의 주인공이 난세를 헤치며 운명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전홍숙은 후금→후주→북송으로 이어지는 중원의 왕조 교체를 남쪽에서 지켜보며 송에 국토를 넘기는 선택으로 동남부를 전쟁의 참화에서 구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극 초반에는 복잡하게 얽힌 등장인물, 지나치게 사실적이며 잔혹한 장면, 과도한 고대 중국어 대사때문에 “시청 문턱이 너무 높다” “역사학과 대학원생을 위한 드라마”라는 혹평을 받으며 시청률이 저조했다. 식인 장면도 등장하는데, 오대의 세 번째 왕조인 후진(後晉)의 군벌 장언택(張彥澤)이 군량을 보충하기 위해 ‘두 발 달린 양’이라고 부르는 백성을 돌절구에 갈아 삶아 먹인다. 이에 반대하는 양아들의 목을 베며 끓는 솥에 삶도록 명령한다. 잔혹하다고 비판받은 부분이다.
그러나 점차 사극 팬들의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기 시작해 최근에는 오대십국 시대 역사 학습 붐이 한창이다. ‘태평년’ 관련 게시물은 SNS 등에서 18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아이치이, 텐센트비디오, 망고TV 등 각종 중국 OTT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영상 리뷰 사이트인 더우반(豆瓣)에서는 10일 현재 평점 7.9를 기록하고 있다.
관영 매체는 전문가를 내세워 드라마 홍보에 나섰다. 리궈창(李國强) 중국역사연구원 부원장은 인민일보 대담에서 “극중 ‘납토귀송’은 단순한 영토의 통합이나 강역의 합병이 아니라 중화민족이 ‘통일’이라는 역사의 대세를 대하는 고도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리 부원장은 “전홍숙이 국토를 수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초기 의지부터 조광윤의 대일통 야망까지 그들의 공통된 목표는 전쟁을 종식하고 천하태평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크고 깨달음을 준다”고 주장했다. 중국 격주 시사잡지 ‘남풍창’은 “최근의 국제 지정학적 배경에서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병법’을 따르는 평화가 강렬한 현실적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달리 대만은 복잡한 심정이다. 대만 연합보는 8일 “드라마 태평년은 단순히 ‘무력통일’ ‘평화통일’을 고취하려 하지 않고 천 년 전 역사의 메아리를 소환해 ‘민족 부흥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지방 할거가 여전히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 전체 동포의 복지를 능가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영토를 바쳐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지혜이며, 상실이 아니라 회귀이며, 종점이 아닌 새로운 태평시대의 시작이라는 분명하고 온건한 메시지를 대만 사회에 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최근 대만을 겨냥한 드라마를 연달아 방영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으로부터 대만을 되찾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한 ‘팽호해전(澎湖海戰)’, 1949년 간첩으로 침투해 대만 국방부 참모차장까지 올랐던 지하 공산당원 우스(吳石)를 소재로 한 ‘침묵의 영광’ 등이 방영됐다.
드라마 태평년은 지난 2일부터 아시아 드라마 전문 채널 아시아앤(AsiaN)을 통해 한국에서도 매일 오전 6시에 방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