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유럽에선 여전히 독일을 경계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1871년 제국 통일 후 국력이 급팽창하면서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데다 나치 점령의 기억은 주변국 뇌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동아시아에서 독일과 비슷한 자리에 놓인 나라는 일본이다. 한국을 비롯해 대만, 중국, 동남아 국가는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지옥 같은 식민 지배를 겪었다. 이에 일본의 재무장화는 과거의 몽마(夢魔)를 상기시킨다.
일본 자유민주당은 8일 실시된 총선에서 중의원 465석 중 316석을 얻어 단독으로 개헌선인 3분의 2(310석)를 넘겼다. 연립 파트너 일본유신회는 36석을 확보했다. 여기에 개헌에 우호적인 국민민주당(28석), 참정당(14석)까지 합치면 개헌 찬성 세력은 394석에 달한다. 반면 제1야당 중도개혁연합을 비롯한 개헌 반대 진영은 의석 면에서 뚜렷한 열세에 놓였다. 정치자금 스캔들과 공명당의 연정 이탈로 위기를 겪던 자민당이 5개월 만에 판을 뒤집은 것이다. 1955년 창당 이래 최다 의석수로, 개헌 추진 명분을 확보한 역사적 압승이다.
국제적 시선은 이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게 쏠린다. 그는 오래전부터 개헌을 공개 주장해 온 보수 우파의 핵심 인물이다. 헌법 개정은 일본 보수 진영이 수십 년간 시도해 왔던 숙원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조차 2015년 안보법으로 집단자위권 행사 해석을 바꾸고 입법까지 했지만, 개헌은 성공하지 못했다. 도쿄 정가에선 "지금 아니면 언제냐"는 속도론과 "여론 반발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압도적인 의석수를 보면, 보수 진영에서 이를 개헌 동력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핵심은 "전쟁 포기, 전력 보유 금지, 교전권 부인"을 명시한 일본 헌법 9조다. 전후 일본의 정체성을 규정한 조항이다. 개헌이 성사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 찬성을 얻은 뒤 국민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해야 한다. 참의원(정원 248석)에선 자민당과 유신회가 120석으로 개헌안 발의선에 모자란다. 따라서 2028년 참의원 선거가 관건이다. 자민당 승리 시 개헌 조건이 갖춰질 수 있다. 대외 변수도 만만치 않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고, 한반도와 대만해협 긴장과 맞물리면 동아시아에 군사적 긴장을 불러올 수 있다.
일본이 이른바 '보통 국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독일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전후 독일은 정석대로 행동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바르샤바 참회(1970년)와 역대 총리들의 반복된 사죄, 피해국에 대한 배상, 지속적인 나치 전범 처벌, 스스로를 낮추는 외교 행보로 수십 년간 멍에를 벗으려고 애썼다. 신뢰부터 쌓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군사력 확장으로 가는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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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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