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정승우 기자] 올림픽 무대에서의 실격 사유는 약물이 아니었다. 장비였다. 규정을 어긴 불소 왁스가 한국 크로스컨트리 선수들의 올림픽 기록을 지웠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종목에 출전한 이의진(부산광역시체육회)과 한다솜(경기도청)은 여자 스프린트 클래식 예선 이후 장비 검사에서 규정 위반 판정을 받았다. 국제스키연맹(FIS)이 실시한 사후 검사 결과, 두 선수의 스키에서 금지된 불소 성분이 검출되며 최종 실격 처리됐다.
영국 'BBC'와 '로이터' 등 외신은 11일(한국시간) 이번 사안을 일제히 전했다. 공식 기록지에는 실격 사유로 '불소 함유 왁스 또는 튜닝 제품 사용'이 명시됐다. 도핑과는 무관한, 전적으로 장비 규정 위반이었다.
문제가 된 불소 왁스는 눈 위의 수분을 밀어내 마찰을 줄이는 효과로 오랫동안 경기력 향상에 활용돼 왔다. 그러나 주성분인 과불화화합물(PFAS)이 환경에 축적돼 심각한 오염을 유발하고, 인체에 암·갑상샘 질환 등 유해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FIS는 2023-2024시즌부터 모든 주관 대회에서 불소 성분 왁스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올림픽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경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성분 검출 시 즉각 실격을 원칙으로 삼았다.
예선 성적만 놓고 보면 두 선수는 본선 진출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의진은 70위, 한다솜은 74위로 상위 30명에게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실격 판정으로 기록 자체가 삭제됐다. 올림픽에 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결과마저 사라졌다.
이번 사태는 한국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앞서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 출전한 일본의 시바 마사키 역시 불소 성분 검출로 실격됐다. 시바는 "월드컵을 포함해 같은 보드와 같은 왁스로 여러 차례 검사를 받았지만 문제된 적이 없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올림픽 기간 특수한 일정과 동선 탓에 평소와 다른 작업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고도 설명했다.
불소 왁스 금지는 명확한 규정이다. 다만 보도에 따르면 '불소가 없다'는 설명으로 유통된 제품에서 성분이 검출되는 사례가 이어지며 관리의 책임 주체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선수들은 실력과 별개로 장비의 한계와 규정의 무게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