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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필향만리’] 無古不成今(무고불성금)

중앙일보

2026.02.1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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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지혜가 담긴 옛글로 너희를 가르치고자 노래처럼 부를 수 있도록 운율을 맞춰놓았으니 많이 보고 많이 들어라. 오늘을 보려면 옛것을 거울삼아야 한다. 옛것이 없이는 지금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증광현문(增廣賢文)』의 서문에 해당하는 제1장 구절이다. 『논어』의 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보다도 더 강하게 옛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시대의 흐름이 지나치게 빠른 데다 인공지능(AI) 덕에 옛것이 없이도 기발한 오늘을 만들다 보니 아예 옛것을 무시하는 경향마저 있다.

無:없을 무, 今:이제(지금) 금, 成:이룰 성. 옛것이 없이는 지금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24x65㎝.
자연과 인간만 살던 지구에 언제부터인가 제3자로서 AI가 끼어들더니 이제는 AI가 인류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 지위를 가지려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AI의 도움을 반기기보다는 인류의 주체 상실을 염려해야 할 판이다. 특히 인류를 꼭 닮아가는 ‘인간형 AI’는 인류가 반려동물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점을 눈치라도 챈 듯 인류의 측은지심까지 자극하며 사랑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무고불성금’의 마음으로 공자가 남긴 옛말을 한 구절 음미해 보려 한다. “처음으로 순장용 인형을 만든 사람은 그 죄로 후손이 없을 것이다. 사람과 모습을 닮게 만들어 죽이는 용도로 사용했으니.” 공자는 순장용 인형을 만드는 것 마저도 사람으로서 차마 못 할 짓으로 여겼는데, 이제 인류의 측은지심까지 자극하며 사랑까지 바라는 저 인간형 AI를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 수억 배 더 강한 능력에다 인간적 정감까지 갖춰가는 AI 앞에서 과연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무고불성금의 마음으로 옛날을 돌아보며 조금 덜 편리해도 좋으니 더 이상의 AI 진화를 금지하는 국제협약이라도 체결해야 하지 않을까.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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