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밑에서 검사들을 다 빼도 좋다. 검찰 반부패부를 싹 끌고 가서 반부패수사청을, 서울남부지검을 싹 들고 가서 금융수사청을, 공안부를 총장 관할 밖으로 들고 나가 안보수사청을 만들어 검찰을 다 쪼개도 된다.” 〈중앙일보 2021년 3월 3일자 1, 4면〉
검찰 없애고 절반 규모 중수청 신설
2대 9대 범죄로 수사권 대폭 늘려
일본 두 배인 수사 총량부터 줄여야
5년 전인 2021년 3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사임 직전 더불어민주당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및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법안 발의에 반발하며 검찰을 여러 개의 전문 수사청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반부패·금융·안보 등 3개의 전문 수사청과 나머지 일반 형사사건(경찰송치) 전담 조직 등 크게 4개로 검찰을 해체하는 방안이었다. 인터뷰 보도 후 친윤 검사는 물론 반윤 검사들까지 “무슨 ×소리냐”며 반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작 본인도 이듬해 집권하자 전문 수사청을 만들긴커녕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개시)권을 복원하며 역주행했다. 그 결과가 오는 10월 2일로 날짜가 못 박힌 검찰청 폐지, 중수청·공소청 출범이다.
흥미로운 점은 민주당의 중수청과 윤 당시 총장의 전문 수사청 모델이 영국 중대비리수사청(SFO)으로 같다는 점이다. SFO는 중대 사기 등 복잡한 경제·금융범죄와 뇌물·부패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의 중점검찰청을 모델로 1988년 신설됐다. 정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중수청 법안과 달리 수사·기소와 재판까지 다 맡는 ‘수사·기소 융합형’ 기구다. 다만 630여 명 규모로 한국의 검사와 검찰수사관 총수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영국은 원래 검찰 없이 경찰이 수사·기소권을 독점해 오다 높은 무죄율 등의 문제로 1986년 기소를 전담하는 왕립검찰청(CPS)을 뒤늦게 도입했고, 이어 전문 수사청 SFO도 만들었다. 우리 형사사법 제도 개혁 논의와는 출발선과 방향이 정반대였다. 중수청은 당초 한국형 FBI(미국 연방수사국)를 표방하기도 했다. FBI는 금주법 단속 같은 연방범죄수사국에서 냉전 시절 방첩·대테러를 포함한 거대 정보·수사기관(약 3만8000명)으로 진화했다.
시장의 혁신처럼 제도의 혁신도 일정한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파괴가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정치가 개입할 때 특히 그랬다. 검찰의 권력 수사가 편향됐다며 고위 공직자 부패 및 직무 범죄 수사를 전담시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5년 성적표가 이를 증명한다. 그사이 공수처는 약 1000억원의 예산을 쓰고도 직접 기소 사건 6건 중 유죄 확정은 검사의 수사보고서 위조 혐의를 기소해 징역 6개월의 선고유예를 받은 게 유일하다. 무죄 확정은 2건이다. 지난해 11월엔 해병특검에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재승 공수처 차장 등 수뇌부가 직무유기 혐의로 나란히 기소되는 굴욕까지 겪었다. 전문성·수사력 부족→잦은 검사 사직·교체→만성적 인력난이란 악순환이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중수청이 공수처 꼴 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정부 입법예고안은 수사력·전문성은 고려하지 않고 규모만 앞세워 또 다른 공룡 수사 조직을 예고한 상태다. 기존 검찰수사관의 절반인 3000명 규모 조직에 검찰 수사권(2대 범죄)보다 훨씬 많은 9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마약·내란외환·사이버) 수사권을 줬다. 검찰 인지수사가 많을 때 6300여 건(2020년)이었는데 매년 2만 건 수사가 목표다. 검찰 처분 사건을 기준으로 일본의 약 두 배인 수사 총량부터 줄여야 하는데, 거꾸로 간다. 민주당은 최소한 견제·확인 장치인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까지 밀어붙인다. 국민 편익이 뭐가 나아지는지 설명은 없고 오로지 내란 청산에 이은 정치검찰 청산 구호가 문제를 덮고 있다. 중수청은 수사권 오남용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더욱이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휘·감독권이 중수청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줄 리도 만무하다. 검찰이 싫다고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을 용인할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