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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팝콘브레인’과 주의력 위기

중앙일보

2026.02.1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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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회의가 시작한 지 20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자기 휴대전화를 차례로 든다. 누군가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누군가는 뉴스를 힐끔거린다. 이런 장면이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회의 중에 보인다면 회의에 관심이 없거나 지루하다는 선언으로 읽혀 무례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이 풍경이 꽤 익숙하다.

초기술사회 숏폼 소비 가속
알고리즘 의존 인한 주의력 위기
주의 깊은 사유는 창의성의 토대
인적자본 기본인 사유근력 키워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디어 습관 중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숏폼 사랑이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세계 48개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0%가 뉴스를 유튜브에 의존하는데 이것은 글로벌 평균 30% 선을 뚜렷하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쇼츠가 대세이다. 와이즈앱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숏폼 콘텐트를 소비하는 데 월평균 52시간을 쓰는데 이것은 넷플릭스 같은 OTT 사용 시간의 7배에 달한다. 도시 환경은 어떤가. 서울 도심 빌딩은 온통 초대형 광고판으로 뒤덮여 운전하거나 길을 걸을 때조차 광고에 주의를 빼앗기게끔 변하고 있다.

알고리즘 기반 미디어의 최우선순위는 체류 시간을 길게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 영상이 끝나면 즉각 또 다른 영상이 자동 재생되고 멈출 틈을 주지 않게끔 설계되어 있다. 기껏해야 1분이 채 넘지 않는 숏폼의 경우 유튜브의 일반 영상이나 OTT 영상과 비교할 때 동일한 시간에 압도적으로 많은 이용자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다. 개별 영상을 5초 만에 넘겼는지, 끝까지 보았는지, 반복했는지 등 1시간이면 60개 내지 100개의 데이터 포인터를 추출할 수 있어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의 무의식적인 취향까지도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의식하지 않는 사이 우리의 주의력은 이들 플랫폼 기업의 자원이 되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은 그저 잠시라고 생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눈을 떼게 된다.

AI를 통한 검색이나 대화도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하나의 질문과 답은 대개 거기서 끝나지 않고 으레 후속 질문으로 확장이 유도된다. 하나를 물으면 그 다음에 필요하다고 여겨질 만한 것들을 후속 작업으로 끊임없이 권한다. 어디까지가 정말 내가 주도적으로 생각해서 요청한 정보인지 애매해지기 십상이다. 물론 AI는 선제적인 후속 질문을 던지는 훌륭한 조력 도구다. 하지만 그 답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거나 재구성해보는 시도를 점차 건너뛰고 의존적이 된다면 결국 인간은 주체적 사고를 외주화하게 되어 장기적으로 사유의 근력은 약화되고 말 것이다.

스스로 조용히 사고하거나 상상하는 시간을 비어 있는 시간, 낭비하는 시간으로 여기고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비어 있는 시간은 뭐든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쉽게 항복한다. 파편화된 수동적 시간 소비에서 거리두기를 할 때 생기는 인지적 여유의 가치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하고 점점 더 만사에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산책을 하다 보면 불현듯 해법이 떠오르곤 했다고 한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뇌에 주어지는 과부하를 풀고 다른 모드를 활성화할 때 나온다는 것이다.

뇌과학이나 인지과학 영역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에 기반한 쪼개진 정보 소비나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뇌의 깊은 읽기능력을 저하시켜 인간 고유의 사유하는 역량과 동기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다수의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른바 팝콘브레인 현상은 한 가지 일에 오롯이 집중하는 능력이 저하되면서 생각이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정신 상태를 지칭한다. 온전한 인간의 집중력과 거기서 나오는 창의성이야말로 AI와 함께 살아가는 초기술시대에 인간이 지켜야 할 역량이다. 기후위기가 지구의 화석연료를 뽑아 쓰면서 심화되었듯 미디어 기술은 인간의 주의력을 원료로 삼아 정신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

기술 변화의 파장은 단기적으로는 과대평가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과소평가되기 마련이다. AI와의 공존을 어떻게 슬기롭게 디자인할 것인가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교육부는 무거운 책무를 가진다. 인적자원의 기본인 국민의 사유의 근력과 지적 수용력을 보존하고 키우기 위해서 미디어 환경과 도시 환경, 가정과 지역, 여가 구조 등을 아우르는 범사회적 접근을 펴야 한다.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하는 것은 애초에 교육을 넘어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조정하라는 제도적 취지였을 것이다.

교육부가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술인재 양성이나 AI 활용 능력 등 산업적 역량을 키우는 일에 쏠려 기존에 해오던 제도권 지식의 관리자라는 관성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육은 전 연령대 시민이 대상이다. AI 시대의 교육 정책의 방향은 AI 인재 육성이나 AI 활용법의 고양뿐 아니라 알고리즘이나 AI에 의해 잠식당하지 않는 인지적 자생력과 사유의 근력을 일상에서 키우는 일과 함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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