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임신 사실을 공개한 후 당선된 자민당 여성 초선 의원 후지타 히카루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후지타 의원은 자민당 소속으로 나가노현 제2구에 출마, 44.8%의 득표율로 34%를 득표한 중도개혁연합 소속 현역 의원 시모조 미쓰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1990년생으로 올해 35세인 후지타 의원은 일본 히토츠바시대학교 사회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 석사(MPP) 학위를 취득한 전직 외교관이다. 일본 외무성에서 경제 안보와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사안을 담당하며 약 10년 간 근무했다. 이후 맥킨지 앤 컴퍼니 컨설턴트를 거쳐 지난해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첫 선거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중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그는 결국 당선됐다.
후지타 의원의 당선이 일본 정가에서 화제를 모으는 건, 의원직 경험이 없는 30대 중반 여성이 지역 정치 명문가 출신의 70대 남성 현역 의원을 꺾었기 때문이다. 경쟁 후보였던 시모조 전 의원은 조부와 부친이 각각 참의원 의원과 국무대신을 지내고 자신도 2003~2012년, 2017~2026년 두 차례 해당 지역구에서 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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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스타성·‘임신’ 공개 전략…시너지 효과
후지타 의원의 당선 요인으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스타성에 기반한 자민당의 전국적 우세와 함께 자신의 임신 사실을 공개한 특별한 선거 전략이 꼽힌다. 그는 선거 기간 소셜미디어(SNS)에서 “새 생명을 선물받았다”고 공표했다.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첫 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밝혔다.
임신 사실을 밝히자 응원도 많이 받았지만 “전업주부의 길을 가는 것이 맞다” “집에나 있어라”라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SNS에 쏟아졌다.
유세 현장에서도 이런 반응을 피할 순 없었다. 물리학 교수인 남편 후지타 토모히로는 선거 운동 기간 일본어로 ‘남편’이라고 적힌 흰색 비니를 쓰고 아내의 유세 현장에 함께 다녔는데, 남성 유권자들이 후지타 의원의 눈은 마주치지 않고 남편만 쳐다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후지타 의원은 인터뷰에서 “그런 반응에 낙담했고 실망했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했다”며 “결국엔 그 말들이 들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반응에도 중도 포기 없이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념 덕분이었다. 임신 및 출산한 여성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이나 괴롭힘을 의미하는 ‘마타하라(マタハラ)’를 근절하는 것이 후지타 의원의 정치적 목표다.
후지타 의원은 “임신 사실을 공개하면 선거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면서도 “임신한 여성도 출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용기를 냈다. 내가 실패하면, 젊은 여성에게 더 적은 기회만 남게 될 것 같았다”고 밝혔다.
그의 ‘뚝심’에 자민당 지도부도 나섰다. 평소 성평등 이슈에 대해 언급을 삼가 ‘여성 정치를 안 하는 여성 총리’로 불리는 다카이치 총리가 직접 나가노를 찾아 후지타 의원의 유세를 지원한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일 나가노 유세 현장에서 “후지타보다 대단한 사람은 없다. 제발 후지타에게 힘을 달라”라고 말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후지타 의원에 대해 “‘임신했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로 일본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고 평했다. 선거운동 기간 그는 성별 임금 격차 해소, 여성의 정치 및 사회 참여 보장,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 독려, 가족 정책 강화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향후 청년과 여성, 가족 중심 정책 추진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중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 총 1285명 중 여성은 313명(약 24%)이었다. NYT에 따르면 역대 최다 여성 후보 출마다. 당선자 가운데 여성 비율은 총 465명 중 68명(약 16%)에 그쳤다. 다만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여성 당선자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