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하며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2017년 소송 제기 약 9년 만에 나온 최종 결론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2일 5·18 기념재단 등 오월 단체 4곳과 고(故)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전 전 대통령과 아들 전재국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전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이순자씨와 아들 전씨는 오월단체들에 각각 1500만원씩, 조영대 신부에게 1000만원 등 총 7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 문제가 된 표현을 삭제하지 않으면 회고록 출판·배포도 금지된다.
이 소송은 2017년 4월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1979~1980)』 내용을 둘러싸고 제기됐다. 전 전 대통령은 이 책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며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주장했다. 헬기 사격 목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서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하며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부정했다.
이에 오월단체와 조비오 신부 유족은 70여개 표현을 삭제·수정하게 해 달라며 회고록을 집필한 전 전 대통령과 이를 발간한 아들 재국씨를 상대로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문제되는 표현들을 삭제하지 않고 출판·배포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이후 전씨 측은 해당 부분만 검게 가려 2판을 냈다.
본안 소송 1심은 원고들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 부자가 5·18 단체 4곳에 각 1500만원, 조영대 신부에게 1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허위 사실이 담긴 표현 62개를 삭제하지 않으면 회고록을 출판·판매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5월 단체나 5·18 민주화운동 참가자들 및 그 가족 전체를 비하하고 편견을 조장함으로써 원고들에 대한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저해한다”고 했다.
항소심 판단도 같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은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의 우두머리로서 무기징역형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장본인”이라며 “그럼에도 이 사건 회고록을 통해 이미 법적으로 단죄된 부분마저 자신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억울하게 십자가를 지게 된 양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진짜 피해자인 민주화운동 세력을 비난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금지하는 표현을 51개로 1심보다 좁혔다.
대법원은 이날 전 전 대통령 측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수긍하며 판결을 확정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피고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단체들의 활동 경과와 회고록 서술방식을 볼 때 통상의 방법으로 회고록을 읽는 일반 독자라면 각 표현이 5·18 단체들을 지목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어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특정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