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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능률 대명사 공기업, KDI 보고로 법 40개 바꿔 개혁

중앙일보

2026.02.12 07:01 2026.02.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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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 회고록] 경제국정, 이랬다 ④

1974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공기업 국제 심포지엄. 인도 연구팀의 라마스와미 교수를 가장 왼쪽에서 볼 수 있다. 오른쪽부터 한국 연구팀의 리로이 존스 미국 보스턴대 교수, 유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필자. [사진 사공일]
최선의 정책 입안과 집행을 위해 전문가와 두뇌집단을 활용하는 국정 운영 방식은 제5공화국에 들어서도 이어졌다. 1980년 말 어느 날,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시 정부투자기관(정부의 직접 지분이 50% 이상인 기업)이었던 한국전력공사는 80년에 그 이전 3년간(77~79년) 평균 순익의 세 배 수준으로 실적을 냈다. 이에 전두환 대통령은 한전을 격려함과 동시에 전체 공기업에 본보기가 될 수 있게, 한전 임직원 특별 보너스 방안을 마련하라고 김 수석에게 지시했다. 김 수석은 KDI 수석연구원이던 내게 그 방안을 한번 만들어 보라고 전화한 것이다.

김 수석은 내가 KDI에서 74년부터 캐나다 국제개발연구센터(IDRC) 후원으로 아시아 9개국(한국·인도·파키스탄·네팔·방글라데시·스리랑카·말레이시아· 필리핀·태국) 공기업 공동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겸 한국팀(KDI) 리더로 정부투자기관 관련 연구를 해온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한국 경제에서 공기업(정부투자기업) 부문의 비중이 높았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국영기업에 크게 의존한 인도 등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특히 70년대 중반까지 국내 총 고정 투자 중 3분의 1 수준을 정부투자기관이 담당했다. 정부투자기관의 효율성을 5%만 올려도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을 1.7%포인트 올릴 수 있다는 단순 추산도 가능했다. 정부투자기관 대부분은 여타 산업과의 전후방 연관 효과가 높은 산업에 치중돼 있어 간접효과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나는 당시 비능률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던 공기업 부문에 대한 대폭 개혁의 시급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내가 차제에 정부투자기관 전반에 관한 대폭 개혁 방안을 마련하자고 김 수석에게 건의했다. 김 수석은 건의를 즉각 수용했다. 그 후 3월에 KDI 실무 작업반을 구성했다. 마침 KDI에서 한국 공기업 부문 연구를 하던 리로이 존스 미국 보스턴대 교수가 참여했다. 그리고 경제기획원 예산심의관과 한국은행·산업은행의 실무 책임자, 주요 정부 투자기관 임직원도 참여하도록 했다. 공기업 연구의 특성상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유훈 교수와 경영대의 곽수일 교수도 팀에 참여하게 됐다. KDI에서는 송대희 박사가 합류했다.

실무 작업반은 정부 여러 투자기관 임직원의 의견과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들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8월에는 대만을 방문해 대만 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제도와 낙하산 인사 방지, 정부의 과잉 사전 통제와 중복 감사 폐지 등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1981년 KDI 수석연구원 시절 ‘정부투자기관 관리제도 개선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이후 ‘정부투자기관 관리제도 개선 추진 계획’을 거쳐 ‘정부투자기관 관리 기본법’이 새로 제정됐다. [사진 사공일]
근 6개월 작업을 거쳐 마련한 ‘정부투자기관 관리제도 개선방안’을 81년 9월 KDI 수석연구원이었던 내가 청와대에서 직접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 자리에는 신병현 부총리 겸 기획원 장관, 김만제 KDI 원장, 김재익 경제수석, 김용한 기획원 예산실장, 박유광 대통령 재경비서관, KDI 송대희 박사가 배석했다. 애초 보고 시간은 1시간으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전 대통령이 특별한 관심 표명으로 보고는 2시간 정도 이어졌다. 보고 직후 프랑스 정부와 한·불 공기업 관련 회의차 파리행 비행기 탑승 시간에 겨우 맞춰 김포공항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보고를 통해 전 대통령을 처음 알게 됐다.

돌이켜보면 이 보고 자체가 정말 놀라운 사건이었다. 국책연구원의 일개 연구원이 직접 대통령에게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비서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거의 2시간 보고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보고 결과 한국 공기업 부문의 대폭 개혁이 이루어졌고 그 후 이어진 파급효과가 컸다는 것이다.

대통령께 보고 이후 ‘정부투자기관 관리제도 개선 추진 계획’이 81년 12월 경제 장관 협의회를 거쳐 확정됐다. 이어서 정부투자기관에 인사권과 경영 자율권을 대폭 늘리기 위한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이 새로 제정됐다. 동시에 40여 개 기존 관련법을 통합·개정·보완하기 위한 입법이 이어졌다. 내가 대통령 경제수석으로 취임한 뒤인 83년 12월에 모든 입법이 마무리됐고, 84년 3월부터 새로운 제도가 시행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능률의 대명사처럼 돼 있던 ‘주인 없는’ 정부투자기관의 가장 큰 문제는 ‘낙하산 인사’였다. 따라서 새 제도의 중심에 정부투자기관에 대한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막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당시 정부투자기관은 임원뿐 아니라, 부장급 실무 책임자 수준까지 외부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83년 말 당시 25개 정부투자기관의 전체 임원 166명 중 절반이 넘는 88명이 외부에서 기용됐다는 조사 보고서도 있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당시 부사장과 이사급(이사는 개혁 이후 본부장으로 개칭)에 대한 주무부서 장관의 인사권을 공기업 최고경영자의 고유 권한으로 위임하도록 법제화했다. 그리고 정부투자기관의 자율경영을 위해 정부의 지나친 사전 경영 개입을 차단하고 최고 경영 책임자의 권한을 최대한 늘리도록 했다. 그리고 오늘날 민간기업 부문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이러한 KDI의 정책 건의는 새로운 법에 거의 다 반영됐다. 이 법은 2007년에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어 지금까지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 이후 세계은행과 유엔개발계획(UNDP) 등은 한국 정부의 공기업 개혁을 높이 평가했고, 특히 한국 정부가 법으로 낙하산 인사를 막았다는 사실을 특기했다. 또한 세계은행은 한국이 도입한 공기업 평가제도를 다른 개도국에 활용을 적극 권장했다. 중남미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브라질·멕시코 등이 이 제도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파급효과도 컸다. 특히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제도는 현재 거의 모든 중앙·지방 공공기관이 실시 중인 평가 제도의 기초가 됐다. 현재 한국의 362개 공공기관이 이 제도에 뿌리를 둔 경영평가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 평가제도는 KDI 공기업팀이 그 후 계속 발전시켜왔다.

나는 아시아 9개국 공기업 프로젝트 관련 업무로 거의 2년간 정말 바빴다. 특히 해외여행이 잦았다. 75년 9월에는 서울에서 9개국의 공기업 연구팀과 각국 정부 정책 담당자 50여 명이 참석하는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1974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공기업 국제 심포지엄의 참석자들이 찍은 단체 모습. [사진 사공일]
당시 인도 연구팀을 이끌었던 N.S. 라마스와미 교수(벵갈루루 소재 인도경영연구원 설립자/원장)는 유신체제하의 한국 방문을 처음엔 거부했다. 나는 이 심포지엄의 비정치성을 강조하며, 이 기회에 한국에 와 직접 경제 발전상을 보라고 설득했다. 결국 라지 니감 인도 재무부의 공기업 담당 국장(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과 함께 한국에 왔다.

회의 참석자들이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볼 수 있도록 KDI는 울산·포항·창원 등 산업 현장 시찰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라마스와미 교수가 기차 안에서 내게 당시 한국 경제, 특히 수출 현황에 대해 물어봤다. 당시 한국의 수출이 인구가 10배가 훨씬 넘는 인도보다 10배 이상 많다는 사실에 그는 놀랐다. 평소 재치 있는 농담을 즐기는 그가 니감 국장을 보며 말했다. “우리, 저 차창 너머로 뛰어내리자.”

그는 심포지엄 마지막 날 참석자 대표 연설에서 한국에 온 것이 본인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고 하며 인도에 돌아가서 ‘돈 안 받는 한국 대사(unpaid Korean Ambassador)’가 되겠다고 했다. 귀국 후 그는 본인의 정규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발전상을 여러 차례 소개했다.

방글라데시 연구팀장이었던 레만 소브한 방글라데시 경제계획위원도 회의에 참석했다. 소브한은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로 방글라데시 주요 기업의 국유화 등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주도한 사람이다. 당시 방글라데시에는 ‘마르크시즘’과 ‘소브하니즘’이 있다고 할 정도로 영향력 큰 인물이었다. 그도 한국을 떠나기 전 만찬 자리에서 한국의 놀라운 경제발전을 보며 자신의 경제 신념을 돌이켜보게 됐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출발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최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경이적 사례다. 나는 그 과정에서 정부가 분야별 전문가·두뇌집단을 적극 활용한 국정 운영 방식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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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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