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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깨달음…“우리의 음악은 땅에서 나온다”

중앙일보

2026.02.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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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악 연주로 시작해 여러 작곡가 작품의 명반을 녹음한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 [사진 프레스토 컴퍼니]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83)는 미소를 띠고 화면에 나타났다. 그의 뒤 넓은 창문 밖으로 초록색 숲이 멀리 펼쳐져 있었다.

“지금 계시는 농장이 650에이커(263만㎡, 79만평)라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큰가요?” 노 지휘자의 미소가 짙어졌다. “지금은 면적이 좀 줄어들었어요. 양도 750마리로 예전보다 적어졌고요. 멋있는 프랑스산 소 170마리도 함께 해요.”

10일 화상 인터뷰에서 가디너는 “음악과 땅의 관계, 또 자연·인간·예술의 연결성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고 했다. 농부의 아들인 그가 고향인 영국의 시골 마을인 도싯의 스프링헤드로 돌아간 이유다.

가디너는 1960년대부터 음악계의 수퍼스타였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 중세 스페인어, 아라비아어를 전공하던 1964년에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창단해 17세기 음악의 해석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어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지휘했다. 바흐·모차르트 뿐 아니라 베토벤·베를리오즈까지 다루는 범위를 넓히며 내놓는 음반마다 화제가 됐다. 특히 바흐의 권위 있는 해석가이며, 1999년부터 바흐의 교회 칸타타 198곡 전곡을 공연하고 녹음했다. 2번의 그래미, 12번의 그라모폰 수상자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그가 지금은 농장과 숲에 빠져있다. 가디너는 2024년 8월 새로운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인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을 만들었다. 60년 동안 이끌었던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떠난 것은 2024년 7월. 프랑스의 한 공연에서 함께 공연했던 가수를 폭행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가디너는 곧 사과문을 발표하고 예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시골 마을로 돌아와 컨스텔레이션 오케스트라·합창단을 조직했을 때 몬테베르디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카티 데브레츠니 등이 이적해 합류했다.

논란을 겪은 후 그의 관심은 보다 근본적인 곳에 머물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스프링헤드 농장에서 열었던 심포지움을 소개했다. “음악가, 생태학자, 농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음악과 땅의 관계에 대해 탐구했다. 콘크리트로 된 공연장에서 자연과 멀어졌지만 우리의 음악은 땅에서 나온다는 걸 기억해야한다.”

컨스텔레이션 오케스트라·합창단을 창단해 고향인 영국 도싯에서 음악과 자연을 결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다음 달 한국·홍콩에서 바흐·모차르트의 미사곡을 연주한다. [사진 프레스토 컴퍼니]
별자리, 또는 성좌라는 뜻을 가진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이라는 단어가 가디너의 최근 화두다. “이 단어는 연결을 상징한다. 오케스트라 안에서도 음악가들은 서로 연결돼 협업한다. 음악을 중심으로 관계의 구조를 만들고, 음악에 대한 사랑을 한데 모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가디너는 컨스텔레이션 합창단·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음 달 한국에서 공연한다. 첫날에는 바흐의 B단조 미사, 둘째 날에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C단조 미사를 들려준다. 그는 1996년과 2004년 내한했고, 첫 한국 공연의 연주곡은 바흐의 B단조 미사였다. 꼭 30년 만에 같은 곡을 연주하는 셈이다.

그는 이번 공연의 핵심이 ‘미완성’이라고 했다. 가디너가 보는 바흐는 위대한 작곡가인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이다. “B단조 미사의 한 순간에 음악이 완전히 멈추고 무너져 내린다.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는 순간이다. 그러다 갑자기 그 반대편으로 나아가 확신의 햇살과 같은 음악을 시작한다. 이처럼 의심하는 작곡가에게 인간적으로 깊이 공감한다.”

또한 모차르트가 끝까지 작곡하지 못한 두 곡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레퀴엠은 죽음으로 미완이 됐지만, C단조 미사곡은 일부러 완성하지 않았다. 신앙과 계몽주의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갈등과 미완성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는 여전히 학구적이고 정교한 해석을 하는 음악가다. 2013년 바흐에 관한 1000페이지(한국어 기준)짜리 책을 냈던 그는 작곡가 몬테베르디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이번 책의 가제가 ‘몬테 베르디와 그의 성좌’라고 했다. “1580~1640년에 쏟아진 천재들, 즉 갈릴레오, 케플러, 셰익스피어, 카라바조, 루벤스, 그리고 몬테베르디의 활동과 연결에 대해 쓰고 있다.” 그는 “아마 이번 책도 꽤나 두꺼울 것”이라고 했다. 공연은 다음 달 3·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김호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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