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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칼럼] AI 정책의 핵심은 국가의 흡수 능력

중앙일보

2026.02.1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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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최근 몇 년간 급속한 기술발전과 국제 정치·경제 환경의 변동은 미래 전망과 예측을 반복적으로 무력화해왔다. AI 발전속도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앞질렀고, 지정학적 갈등심화는 글로벌 경제질서를 구조적으로 바꾸고 있다. 효율보다 안보를 고려해야 하는 생산공급망의 재구성은 기업인과 정책당국자들의 고심을 깊게 하고 있다. 기업의 기술경쟁력, 산업생산능력이 국가안보정책과 직결되는 시대로 들어섰다. 불확실성은 이제 상수가 되어있고, 갈등은 날로 깊어지는 이 세상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이 금년 다보스포럼을 개최하기에 앞서 『새로운 경제의 네 가지 미래: 2030년의 지경학(geoeconomics)과 기술』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글로벌기업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 중 72%가 향후 5년간 세계경제구조를 바꿀 가장 중요한 변화동인으로 ‘AI 기술 발전’을, 52%가 ‘지정학적 분절화’를 꼽았다. 이 두 가지 핵심 동인이 세계경제구조를 어떻게 재편할지에 대해 향후 5년간 변해갈 세계모습의 네 가지 시나리오를 가상하고, 기업인들에게 이에 대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기술 발전 속도보다 활용 속도가
국가경제 생산성 향상에 더 중요
AI 시대에 한국이 수혜자 되려면
구조개혁으로 AI 수용도 높여야

이 보고서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기술발전속도’가 선두 빅테크들의 기술개발 속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를 포함한 단위 조직에 AI와 관련기술이 얼마나 넓고 깊게 스며드는가 하는 속도를 말하고 있는 점이다. 다시 말해 AI, 휴머노이드 등 신기술 발전이 기업생산성과 경제에 변화를 가져오는 속도는 기술개발 속도 그 자체보다 국가와 조직이 이를 넓고 깊게 활용할 수 있는 수용성에 달려있으며, 결국 이는 그 나라 노동시장, 고용구조, 정부조직, 기업구조가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AI 기술은 이미 글로벌 공공재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으며 모델과 알고리즘의 격차는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AI 시대가 도래하며 국가간, 기업간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AI기술 개발 능력보다도 이를 받아들이는 경제구조와 제도적 수용성이 될 것이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났으나 독일과 미국이 후에 신기술 발명의 최대수혜자로 부상하게 된 것은 새로 발명된 기술을 생산현장에서 넓고, 깊게 도입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이 나라들의 경제제도와 사회구조가 이를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AI 정책들-대규모투자, GPU 확보, AI 인재 양성, 법체제 정비, 대통령 직속 AI 전략 조직 강화 등-은 모두 필요한 조치들이다. AI 인프라는 초기 진입 비용이 높고, 국가 차원의 전략적 개입 없이 민간부문의 힘만으로 구축하기는 어렵다. 특히 컴퓨팅 자원과 핵심인력 확보, 데이터 활용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다뤄가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 정부의 문제 인식은 바르고 이를 추진하는 열의는 희망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과제는 여전히 묻혀있다.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처럼 AI 기술을 선도해 나가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를 빨리 넓게, 깊이 활용하는 나라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개인들은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AI 모델들을 빠르게 사용하고 있지만 AI와 신기술이 실제 기업과 사회 전반의 조직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구조와 수용성을 우리는 갖추고 있는가? 많은 GPU를 확보하고, 소버린 AI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현장의 업무 프로세스, 조직구조, 생산 방식에 빨리, 깊이 적용하지 못한다면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AI 시대는 기존의 업무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수준(이는 개인의 AI 활용으로 이뤄질 수 있다)을 넘어 업무 자체를 재설계하고 조직을 재구성하며, 인적자원의 배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를 요구하고 있다. 고용구조의 조정, 직무의 재정의, 조직 간 경계의 변화, 그리고 임금과 보상체계의 개편이라는 통로가 막혀있는 사회에서는 AI는 개인의 용도와 시범사업에 머물고 생산성 혁명으로 우리를 끌어가지 못할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AI와 신기술을 우리경제의 생산성 혁신으로 연결하려면 지금 우리에게 AI 투자 못지않게 시급한 것이 구조개혁이다. 또한 이를 뒷받침할 사회안전망 구축과 재정구조의 재설계이다. 유연한 인력조정을 위한 노사제도의 변화, 성과 평가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 등을 빠르게 해 나가지 못하면 AI의 실제 생산현장, 업무공간에서의 활용은 제약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 시대에 발빠르게 대응한 것이 오늘날 반도체, 정보통신산업, K-culture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했듯이, AI 시대에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지금 광범위한 구조개혁의 시동도 함께 걸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제들이고 정치적 부담도 클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AI 자체에 대한 투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국가능력에 대한 투자이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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