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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원의 이코노믹스] 불확실성의 비용은 너무 큰데 근로조건 개선 여지는 적어

중앙일보

2026.02.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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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시행에 앞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노동조합, 기업, 정부 등 모두 3월 10일 이후를 대비하느라 분주하다. 금속노조는 법 시작과 동시에 원청에 교섭요구 공문을 보내기로 했다. 거부하는 경우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과 고소·고발을 병행할 예정이다. 원청 사용자는 실질적 지배관계 배제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계약사항 점검, 시스템 개편, 관리 관행 수정 등 ‘완벽한 타인’을 위한 준비에 몰입 중이다. 개정법이 의도대로 하도급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까?

원청, 특정 협력사 의존 낮추고 AI·로봇 대체나 해외 이전할 수도
파업기금 없는 하청노조 쟁의여력 없어…파업 시 노노 갈등 우려
기대보다 걱정 큰 노란봉투법,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 어려워
연관 제도 종합적으로 재점검하고 보완·대체입법 적극 고려해야

사용자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로부터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보호하기 위해 추진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을 확대했고, 사업상 의사결정도 단체교섭 의제에 포함했다. 모두 불명확하고 모호한 개념(실질적·구체적 지배, 사업상 의사결정)을 핵심으로 포함해 3월 10일 이후 단체교섭과 법률 다툼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형식상 무리한 입법이지만 그 효과로 하청 근로자들의 임금·근로조건이 개선된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는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연관된 제도와 정책, 이해관계자들의 상호작용, 노동조합의 조직과 교섭력 등 복잡한 변수의 터널을 무사히 지나야 가능한 것이어서 쉬운 일은 아니다.

‘비용의 하방 전가’ 터널이 된 가치사슬
부품을 매개로 한 기업 간 거래는 산업 발달과 기술분업 심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확대되며, 이 과정에서 원청과 하청 사이의 거래관계는 단순한 재화 교환을 넘어 장기적 상호의존을 동반한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초기부터 대기업을 정점으로 부품 협력사를 수직으로 통합해 장기거래를 관행화했다. 고도성장에 진입하던 1970년대 중반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1975년)은 장기계약, 생산·판매 알선, 자금·세제 지원, 기술개발 등을 통해 대·중소기업 간 계열화를 촉진했으며 이에 기반해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에 이전되었다. 하청 근로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개선되었고 이에 기반해 제조업을 중심으로 중산층이 형성됐다.

하지만 낙수효과의 시대는 1997년 외환위기로 끝났다. 기업 구조조정과 경쟁환경 변화에 따라 공급망이 재편되었고 글로벌 생산네트워크가 결합하면서 중층적 모듈화의 새로운 구조로 전환되었다. 정리해고와 글로벌화에 따른 고용불안으로 주요 대기업 노동조합의 임금 요구(wage militancy)가 거세졌으며, 변동성과 불확실성, 노동조합의 임금 프리미엄에 직면한 기업은 초과비용을 공급망에 이전했다. 원·하청 공동 ‘성과의 하방 이전’ 채널이던 가치사슬은 오히려 ‘비용의 하방 전가’ 터널로 전환되었다. 위계적 통제와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결합한 공급사슬은 경제성장기에는 하청과 성과를 공유하면서도 경제위기나 제도 충격의 시기에 비용을 아래로 떠넘기는 속성을 드러낸 셈이다. 이로써 1997년 이후 대기업 정규직의 중심부 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주변부 시장 간 분단이 심화하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상반기 5~299인 사업체 임금은 300인 이상 대기업 대비 71.8% 수준이었으나, 2025년 같은 기간 62.1%까지 떨어졌다. 2025년 상반기 대기업 근로자 임금(월 653만7084원) 대비 중소기업 근로자(1~299인) 임금은 56.8% 수준이다. 같은 통계에서 대기업 근로자는 정규·비정규직을 합해 347만2000명(20%)이며, 중소기업 근로자는 1672만6920명이다(이상, 사업체 노동력조사). 정확히 20 대 80의 노동시장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차이도 크다.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2024년) 결과 300인 기준 대기업 조직률은 31.0%이며, 중소기업은 6.4%다. 노동조합의 임금 프리미엄은 점점 커지는 추세이며, 조직률이 높을수록 외주화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노동시장 분절과 근로조건 격차의 원인이 공급망에만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거래의 불공정을 해소하고 하청 종사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자 국회·정부·노사 모두는 수십 년간 노력을 지속했다. 그 정책과 제도의 결과물은 다양하며, 노란봉투법도 그중 하나다.

원·하청 거래의 경제법·노동법 규율
원·하청 거래는 경제법과 노동법 등의 두 가지 규범으로 규율된다. 경제법적 규율은 세 가지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 거래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계약서의 서면 발급 의무화, 부당한 대금 감액 금지, 기술자료 제공 요구 제한, 대금의 적기 지급 등이 핵심이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과 양극화 완화를 목적으로 한다. 상생결제, 납품대금 연동 등이 주요 수단이다. 마지막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하도급계약서’다. 표준계약서는 거래조건의 균형을 유도하는 연성 규제로, 분쟁 예방과 준법 비용 측면에서 거래비용을 낮추고 계약 조건의 일방적 설정을 제한한다.

노동법적 규율은 ‘고용관계, 단체교섭, 안전보건’을 축으로 설계되어 있다. 우선, 근로자 지위에 대한 규율이다. 적법 파견을 제외하고 원청이 하청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휘·명령하는 경우 계약 형태와 무관하게 고용관계가 인정된다. 법원은 하도급 계약으로 위장한 근로자 파견의 경우 직접고용 의무를 부과한다. 다수 기업에서 불법 도급이 인정되었고,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인 기업들도 많다. 산업안전보건 및 중대재해 처벌 영역에서도 원청 의무와 책임이 부과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 회사는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 의무를 지며,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 확보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 부과를 통해 ‘위험의 외주화’가 곧 ‘책임의 외주화’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은 개정노조법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어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인정하고, 단체교섭 대상을 사업상 의사결정까지 확대했다.

무력한 제도들 위에 또 얹은 노란봉투법
이상이 공정거래와 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한 입법의 역사다. 여러 제도를 덧대며 계약상 불이익, 근로조건 격차, 안전사고 등을 예방·개선하고자 노력해 왔으나 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청기업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의 속도는 대기업에 비해 터무니없이 더디며, 원청과 연계한 하청 노동자 안전사고도 줄지 않았다. 2024년 기준 중대재해 사망자 중 47.7%가 하청 소속이며 이는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 수준이다. 노란봉투법은 이렇듯 무력한 제도들 위에 법 하나 더 얹은 셈이다. 한계효용이 얼마나 될지 두고 볼 일이지만 법안 내용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기대보다 걱정이 크다. 기업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불확실한 경제 환경이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공급망의 초과이윤(준지대) 분배에 직접 개입하는 제도로,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같이 가치사슬 구조 자체를 전면 재편하는 촉매다. 이는 당사자 간 계약 이행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거래 위험과 거래비용을 확대해 사용자와 원청 노동조합의 기회주의를 유인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사용자성 여부 및 교섭 단위 등 불명확성에 따른 법적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원청은 거래 구조를 재설계하고 책임을 분산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교섭이나 책임 부담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거래관계를 더 ‘시장적’으로 바꿀 수 있다. 계약 기간을 단기로 쪼개고 다수의 공급업체를 경쟁시켜 특정 협력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식이다. 이는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을 초래한다. 하도급 단계를 세분화하거나 중간업체를 끼워 넣어 법적 책임의 경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유력한 방법이다. 공급망의 층위를 복잡하게 만들면 기업 간 직접 연결이 약해지고, 사용자성 인정이나 책임 귀속에 대한 사실관계 입증이 어려워진다. 마지막은 하청이 담당하는 사업을 인공지능(AI)·로봇으로 대체하거나, 해외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노동집약도가 높거나 기피 업무 등은 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필요조건을 모두 갖춰도 교섭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법적 분쟁이 불가피하다.

대·중소기업 격차해소 특별법도 고려를
여러 난관을 넘어 하청 노조가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 테이블에 앉는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교섭력의 지렛대는 쟁의행위 즉 파업뿐인데 이를 조직하고 지탱할 힘(파업기금)이 하청노조에 없다. 파업이 발생해도, 그로 인해 생산과 서비스 공급이 중단되면 원청 노동조합과의 이해 충돌이 불가피하다. 협력회사의 파업으로 생산이 중단되는 경우 그 손해가 원청근로자에게 전가되는데 이를 기꺼이 수용할 원청 노동조합이 얼마나 될까. 요컨대 기업별 교섭구조에서 원청사용자와 하청노조의 교섭이 본격화하면 원청노조와 하청노조 간 노노 갈등은 불가피하다.

결국, 현재의 개정노조법으로 하청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질적·구체적 지배’ ‘사업상 의사결정’ 등 개념의 불확실성이 초래할 거래비용이 너무 큰 반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담보 능력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입법 취지를 되짚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 논의해야 하며, 보완입법 또는 대체입법 등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적 보호제도, 파견법(불법파견) 등과의 충돌 가능성도 점검하고 제도 간 시너지가 가능하도록 연관 제도를 종합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여러 제도를 모아 패키지 법 형태의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을 설계하는 것도 고려할 대안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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