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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선] 다카이치 총리의 ‘강한 일본’이 불러올 변화

중앙일보

2026.02.12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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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
일본 중의원 선거가 한창이던 지난주 도쿄와 요코하마, 요코스카 일대를 돌아봤다. 대학 교수와 대학생을 만나고, 식당과 상점에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선거 분위기를 읽었다. 도쿄로 가기 전에는 유튜브로 유세 현장을 살폈는데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압승을 직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확신에 찬 비전 제시로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새벽 3시에 출근해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는 전형적 카리스마 리더십을 보여줬다. 정계에 진출한 1993년 이후 현장 유세 경험에 방송 캐스터 경력이 더해지며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비전과 헌신의 카리스마 앞세워
17개 첨단산업 분야 투자 본격화
일본의 변화에 한국도 긴장해야

이번 총선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가는 곳마다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청중을 몰입하게 만든 동력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피부에 와 닿는 공약이었다. “국민의 생활을 지키고, 의료·복지·교육·일자리 환경을 개선해 일본 열도를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당연해 보이는 공약 같지만 지금 일본에서 이만한 민생 이슈는 없다. 0%대 저성장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엔화 약세로 수입물가가 오르며 생활 불안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불안을 ‘강하고 풍족한 일본’이라는 구호로 반전시키고 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호소는 국가 재설계 선언이었다. 그 결과 자민당은 316석이란 압승을 거뒀다. 일본 유권자들이 선택한 것은 자민당이 아니라 다카이치 총리다. ‘다카이치의 리더십이 있어야 일본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강한 일본’은 어떤 변화를 예고하고 있나. 일본은 ‘잃어버린 30년’ 동안 끊임없이 출구를 모색해왔다.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경제는 구조적 저성장에 빠졌다.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은 행정개혁과 금융빅뱅을 추진하며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성역 없는 개혁’을 내걸고 부실채권 정리와 우정 민영화를 단행했다. 소리는 요란했지만 성장 모멘텀은 제한적이었다.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 정권은 금융완화·확장재정·구조개혁이라는 ‘세 개의 화살’로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주가 상승과 고용 개선 등 성과도 있었지만,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사나에노믹스’로 불리는 다카이치 총리의 정책은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에 서 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과거 재정 지출이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인프라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전략산업 중심의 국가 주도 투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기술, 차세대 배터리, 방위산업 융합 등 17개 전략 분야를 선정해 대규모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이는 국가채무만 부풀리는 단기 부양책이 아니라 산업 구조를 개조하는 시도다. 한국과 대만, 중국에 빼앗기거나 추월당한 반도체·배터리·방산 등 고부가가치 분야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중국 제조 2025’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일본판 첨단산업 전략이 본격 가동되는 셈이다.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중의원 465석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다.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참의원이 법안을 부결해도 재의결이 가능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기반으로 과감한 재정 투자에 나선다. 17개 첨단산업을 전국에 배분해 지역별 클러스터를 육성한다. 도쿄 중심에서 탈피해 일본 열도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

안보 측면에서도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이 동맹국의 방위 부담 확대를 요구하는 기조에 맞춰 일본은 안보 법제 정비와 방위력 증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입장에선 일본과 협력해야 하지만 군사와 산업에 모두 쓰이는 반도체·조선·방산 분야에서 경쟁이 불가피하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강한 일본’의 두 얼굴이다.

결국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일본이 강력한 리더십을 만나 국민이 똘똘 뭉쳐 강한 일본을 만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답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 성장 둔화와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 속에서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기조차 쉽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2020년 세계 9위까지 올랐던 한국의 경제 순위는 계속 밀려나 올해 15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칫 일본은 부활하는 데 한국은 침체의 수렁에 더 빠져드는 형국이 아닌가. 그동안 배울 게 없다고 했던 일본이 깨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정책을 잘 지켜보면서 한국도 다시 신발 끈을 매야 할 때가 왔다.





김동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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