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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의 시시각각] ‘거대한 수레’와 창업 오디션

중앙일보

2026.02.1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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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 콘텐트3부국장 겸 기업연구부장
지금 전 세계의 돈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인공지능(AI)이다. 미·중 힘겨루기의 핵심은 AI이며, 구글·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 4개 기업이 올해 계획한 자본지출만 7000억 달러(약 1022조원)다. 한국의 지난해 총수출, 일본 정부의 올해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중국마저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AI가 기업과 국가의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거란 기대 때문에 몰린 돈이다. 법률·재무 지식이 없어도 AI 비서를 시켜 뚝딱 보고서를 쓸 수 있고, 24시간 일하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산업 현장에 투입될 채비 중이다. 이러니 기업의 투자는 노동(인간)보다 데이터센터, 로봇 같은 자본집약적 기술 인프라에 더 쏠릴 수밖에. 기업의 이익이 근로소득 형태로 순환될 통로는 점점 더 좁아진다는 뜻이다.

AI 폭풍에 줄어드는 일자리
대안으로 ‘창업’ 꼽은 정부
오디션 전에 묵은 숙제부터

그래서 휴머노이드의 공장 투입을 반대한다는 현대차 노조의 반응은 놀랍지 않았다. 대기업 노조의 철밥통 지키기에 진절머리가 난 이들은 ‘거봐라. 노조가 큰소리치는 시대는 끝났다’고 냉소하지만, 위태로운 게 대기업 일자리만은 아니란 걸 우리는 안다. 사무직에선 이미 AI가 일자리를 없애는 징후가 뚜렷하다. 국내 서비스업 일자리 중 전문·과학 및 기술 분야 취업자 수가 지난해 12월(전년 동월 대비 5만6000명 감소)에 이어 1월에도 9만8000명(6.6%)가량 줄었다. 법률·회계 같은 영역에서 신입이 하던 일을 AI가 대체한 영향이 컸다.

AI가 고용 지형마저 바꾸고 있으니 이제 월급을 모아 자산을 불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수도권 부동산 투자는 길이 막혔고, 돈이 흘러갈 곳은 주식시장뿐이다. 성과급 2964%를 받는 SK하이닉스의 직원이 될 수 없다면 주주라도 되자는, 이번이 막차일지 모른다는 ‘불안’의 소용돌이가 빚투를 부르고 주식 시장을 달구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는 냉골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소비쿠폰 13조원을 뿌렸지만 내수와 고용은 여전히 차갑고, 자본이 절실한 기업들의 회사채는 안 팔린다. 그나마 돈이 도는 코스피 시총의 40%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두 회사 몫이다.

AI와 로봇의 일자리 위협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는 없다”며 양극화 돌파구로 ‘창업’을 제시했다(1월 30일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수도권 대기업 고용 중심의 성장 물길을 창업-청년-지방으로 틀겠다는 거다.

방향 자체는 맞다. 그런데 방법이 이상하다. 전 국민 창업 오디션을 열어 5000명에게 1인당 200만원씩 지원하고, 최종 100명이 도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TV로 방영하겠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1년에 한 번은 너무 적다. 분기별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문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창업이 취업의 대안이 되지 못한 문제가 붐업 이벤트로 풀릴지는 미지수다. 정부·지자체가 상금을 내건 창업 오디션은 이전에도 많았다. 창업자들을 좌절시킨 건 겹겹이 쌓여 있는 규제의 벽이었다. 게다가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쉽지 않고, 투자금 회수를 어렵게 하는 자본시장의 한계 등 묵은 숙제들 때문이었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 “보조금 준다고 아이 낳지 않듯, 창업도 하고 싶어야 하는 것” “스타트업이 크기도 전에 두들겨 맞고 꺾이면 누가 창업하겠나. 미래지향적인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정치를 해 달라”(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우리 정치권은 택시기사든, 변호사든, 약사든 직역단체와 신생 스타트업 간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낸 적이 없다.

최근엔 AI 창업자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글로벌’이 생존 조건인 AI 경쟁에서 미국 실리콘밸리로 자본·인재·기술이 더 집중되는 마당에 한국은 지난달부터 세계 최초로 AI기본법을 시행 중이다. 사전 통제 성격의 플랫폼 규제도 강화하는 중이다. 규제를 더 촘촘히 하면서 ‘창조적 파괴’를 외치는 건 공염불이다. 오디션보다 생태계 회복이 먼저다.





박수련([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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