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산 내려와서도 야동 찾았다…사패산 살인범의 역겨운 자수

중앙일보

2026.02.12 12:00 2026.02.12 16:1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제6화. 사패산, 침묵의 비탈에서


되돌아간 그날의 오후

우리는 그를 데리고 다시 사패산을 올랐다.

범행 후 열흘,
그날과 닮은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졌고, 등산로 곳곳엔 언론의 카메라와 주민들의 분노 어린 눈빛이 박혀 있었다.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었고, 누군가는 욕설을 삼켰다.

침묵은 공기처럼 무겁게 내려앉았고, 응어리진 분노는 숨 쉬는 것마저 버겁게 했다.
2016년 사패산 살인사건 현장검증. 사진 가운데가 의정부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필자다. 연합뉴스

한참을 오르던 중, 나무 뒤에서 갑자기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야! 이 자식아!”

순간 본능적으로 막아섰지만, 그의 발길질은 피의자의 몸에 닿았다.

숨진 피해자의 아들이었다.

우리는 말릴 수밖에 없었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그의 울컥한 숨소리와 눈빛엔 수백 번쯤 되뇌었을 원망과 죄책감이 겹쳐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그가 분이 풀릴 때까지… 이 산길 어디쯤에서 이 남자에게 끝없이 울분을 쏟게 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가… 죽일 놈입니다… 차라리 저를 죽여 주세요….”

정상도(가명)는 아들의 발길질에 땅바닥에 주저앉다시피 무너졌고, 산이 울릴 만큼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의 울음은 공허했고, 그의 고백은 누구의 마음에도 닿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멈춰 선 곳. 바위 뒤, 사람이 좀처럼 찾지 않는 외딴 자락.

 연합뉴스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숨을 쉬었던 그 자리였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입술을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였어요… 음악 듣던 여자가 있었고… 뒤에서 목을 감았어요. 그리고… 주먹으로 두 번… 그때, 움직임이 없었어요.”

단 두 줄 남짓한 고백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잔혹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묵직했다.

그 순간, 산은 숨을 멈췄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고요 속에서 나무와 바위, 바람에 떨리는 풀잎까지도 모두가 그날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누군가, 아무것도 모르는 한 여인이, 아주 조용히 목숨을 잃었다고….

우리는 되묻지 않았다.

그가 움직이는 한 걸음, 내뱉는 한마디마다 검은 진실이 따라붙었고 그 자리는 이미 생을 마감한 한 여성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람만이 잎을 스쳤고, 형사들의 발자국만이 땅에 메아리쳤다.

피해자는 그곳 한낮의 산자락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홀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그는 혼자였고, 우리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되짚는다


그날, 현장검증을 마치고 하산을 준비하던 길이었다.

사건 현장 바위를 따라 늘어진 나무 그늘 아래. 형사 한 명은 조용히 하늘을 응시했고, 또 다른 형사는 여전히 피해자가 누워 있었던 돗자리 자리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수십 번을 되짚고 또 되짚었다.

그날, 그녀의 마지막 발걸음과 그녀가 남긴 흔적들을.

시간은 앞으로 흘렀지만, 우리의 수사는 언제나 과거를 향해 걸었다.

되돌아가는 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자수는 했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연합뉴스

아침 7시10분, 침묵을 깨운 전화

6월 8일, 그날 아침 하늘은 유난히도 맑고 푸르렀다. 하지만 무전기로 울려온 단 한마디가 그 평온을 단숨에 깨뜨렸다.

“사패산 8부 능선 인근에서 여성 사망자 발견.”

우리는 속으로 수백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보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사패산 중턱, 등산로와 인접한 전망 좋은 바위 뒤편 외진 장소.

펼쳐진 돗자리 위엔 김밥과 물병, 반찬통이 흐트러져 있었고, 한 여성이 그 위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상의와 하의는 반쯤 걸쳐 있었고, 가방은 열려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목엔 무언가에 압박된 자국이 선명했다.

형사로서의 본능은 분명히 말했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평온한 자연 속에서 일어난 잔혹한 침범, 누군가의 손에 의해 그 여성의 생이 끊겼다.

피해 여성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녀가 걸어간 길을 따라 시간을 되짚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더듬은 첫걸음

피해자는 허정숙(가명·55).
일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정숙씨는 도시락 재료를 사고, 혼자 산에 오르며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이 세상과의 연결은 끊어졌다.

그녀의 마지막 시간은 따뜻한 햇살과 음악, 그리고 조용한 산중이었다. 그렇게 평온했던 장면이 죽음으로 물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여느 산이 다 그렇듯 CCTV도 부족했고, 목격자도 없었다.

무수히 갈라진 등산로만큼, 수사도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현장 감식을 통해 채취한 체모 다섯 가닥, 족적 하나. 그 작은 흔적들을 붙들고 우리는 어둠 속을 걷듯 진실을 좇았다.

그리고 부검 결과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그것은 망설임 없는 살인이었다. 그녀의 목엔 누군가의 ‘의지’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건 단순한 강도도, 우발적인 충동도 아니다.
의도된 폭력이었다.

밤 10시55분, 전화를 건 남자

수사 사흘째 밤.

답보 상태였던 수사를 가르며 경찰서 형사과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제가… 사패산에서 그 여성을 죽였습니다.”

(계속)

그는 “실수였다”는 말과 함께 대략적인 위치를 말하며 자수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모든 증거는 반대를 향하고 있었다.
실수라던 그는 범행 후 산을 내려온 뒤에도 충격적인 포르노를 검색했다. 그날의 더러운 행각,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3862


박원식.김현정([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